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7일 (금)
전체메뉴

[작가칼럼] [작가 칼럼] 미안하다, 당신 또한 한 마리 토끼라면- 김륭(시인)

  • 기사입력 : 2010-01-08 00:00:00
  •   
  • 시인들은 많다. 그러나 시를 발표할 지면이 없다는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당연히 시집 한 권 출판하기 어렵다고 한다. 물론 내 호주머니에 돈이 없거나 뛰어난(?) 시를 쓰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니까 시를 쓰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시쳇말로 죽어도 밥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시를 쓰기 위해서도 돈이 있어야 한다니….

    문학 출판이 호랑이 앞의 한 마리 토끼처럼 죽음 직전에 내몰린 건 이미 오래 전이다. 시장경제 가치만을 신봉하는 황금만능주의 앞에 문학이라고 예외가 있을 수는 없다. 화려한 대중문화 공연의 확산, 관광 문화재의 육성, 레저산업의 확산 등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쫓기는 사람이 어디 시인들뿐이겠는가. 이즈음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겉만 번지르르한 문화정책과 돈이면 무엇이든 용서가 된다고 부추기는 시대에 그래도 글을 쓰겠다고 골머리를 싸맨 시인, 이를테면 ‘희귀동물’(?)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새해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자. 그리고 어디 한번 물어보자. 이즈음 당신은 몇 권의 책을 읽었고, 무슨 책을 읽었는가? 시를 쓰는 입장에서 독자인 수많은 당신들의 답을 굳이 듣지 않아도 서점에 가보면 안다. 팔려 나가는 문학책은 대개가 베스트셀러용 연애소설일 뿐 사색이나 사상, 시대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을 담은 진지한 작품집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창고에서 처박혀 있다.

    하긴 온몸을 자극시키는 외설적인 문화상품이 자판기 커피처럼 쏟아져 나오고 저질 인터넷 프로그램들이 공짜로 둥둥 떠다니는 마당에 시집이나 인문과학서, 철학서에 손이 가겠는가. 가뜩이나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서 골치 아프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고 실존적인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책은 여전히 나와 팔리고 있고 진정한 문학 독자층은 아직 ‘희귀동물’들 주변에서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고민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미안하다, 당신 또한 한 마리 토끼가 아니란 법은 없다. 호랑이해의 벽두부터 하필이면 토끼를 등장시켜야 하는 사실이 죄스러운 일이지만 고백컨대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한 마리 토끼처럼 시대에 내몰리고 있다. 독자들, 그러니까 당신의 존재가 문학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실체인지 아니면 문학을 벼랑으로 내몰고 돈과 쾌락으로 포장된 저질문화만 번성케 하는 하등동물로의 퇴화인지는 당장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책 한 권 읽지 않는 당신이, 삼류연애소설이나 읽는 당신의 취향이 정부의 문화정책 입안자들과 출판사 사장, 서점 주인들을 돈에 굶주려 미친 호랑이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당신의 잘못된 취향이 곧바로 문학을 호랑이 앞의 한 마리 토끼로 내몰 만큼 막강한 지배력을 휘두르게 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당신은 점점 ‘희귀동물’을 사랑하는 인간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그건 곧 내가 사는 이곳이 동물의 왕국(?)으로 변해간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희귀동물’이나 토끼를 먹여살려야 할 정부는 어떤가. 라면 박스로 고양이 집을 지어주듯 작은 도시 마을마다 도서관 하나라도 더 짓고 그 안에 서점에서 잘 팔리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책들을 비치해 삶의 질을 높여야 할 정부까지 이른바 한류 등을 앞세운 문화 관광 산업에 혈안이 되어 날뛰는 걸 보면 당장 ‘멸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너도나도 돈, 돈, 하지만 인간의 삶이 천박한 돈의 논리에 언제까지 지배당할 수는 없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윤리도 도덕도 뒷전인 정부를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참되고 정의로운 지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 각 지자체마다 가수들이나 불러벌이는 축제 따위가 선거 때 표를 모을 수는 있겠지만 문화가 될 수는 없다.

    소시민들의 지적 호기심과 정신적 모험심이 진정한 문화이고 그것이 곧 경쟁력이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를 등에 업은 호랑이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한 마리 토끼로 살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이다. 현재에서 미래는 쫓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륭(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