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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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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이란의 터어롭(Taarof) 소프레(Sofreh) 문화- 주태균(수필가)

  • 기사입력 : 2009-07-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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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베파르머히드’이다. 뜻은 영어 ‘please’와 비슷한 말이다.

    낯선 사람에게 자기들이 먹기 위해 차려 놓은 음식을 가리키며 ‘베파르머히드’라고 말한다. 좀 드시고 가라는 인사이다. 이 말속에 겉치레적 인사의 속뜻이 숨어있는 것이 터어롭 문화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체면 문화이다.

    이란에 살면서 이런 터어롭 문화를 무척 많이 경험해 보았다. 한 3년이 지나면서 이 문화의 속뜻과 진정성을 알게 되었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대뜸 자기 집에 가서 좀 놀다가 가라고 권한다. 처음엔 이런 권유가 진짜인 줄 알고 내심 마음이 즐거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진짜로 가겠다고 나서면 십중팔구는 몹시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의 권유이다.

    이럴 때 진짜로 가고 싶다면 터어롭 문화의 몇 단계를 거쳐야 가능하다.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이 인사치레로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기회에 가겠습니다’라고 하면 이 양반은 한 술 더 떠 오늘이 적기인데 하고 또 겉치레 인사를 한다. 이때 “말씀이 너무 고맙습니다. 다음에…” 이런 식으로 줄다리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이게 터어롭 문화이다.

    이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 문화는 거의 모든 생활 속에 다 들어 있다.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보고 칭찬을 하면 금방 당신이 원하면 가지라고 한다. 실제로는 자기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인데 가지라고 한다고 덥석 가진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실망이 크겠는가? 터어롭 문화에서 당신이 내 물건을 보고 칭찬을 해 주었으니 예의상 내가 그렇게 말한 것뿐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터어롭 문화는 일상처럼 적용된다.

    “얘야, 용돈 받아라” 이렇게 웃어른이 말할 때 아이가 넙죽 돈을 받으면 영 예의 없는 아이로 취급을 받는다. 이때 손사래를 저으면서 “괜찮습니다. 용돈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고 사양을 몇 번인가 하고 못 이기는 척 받아야 예의 바른 아이로 취급받는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양보하는 풍습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눈치가 요구된다. 터어롭 문화를 겉을 중시하는 겉치레 문화로 본다면 다소 야박해 보일 거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로 본다면 가슴 따뜻한 애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음식을 먹을 때 밥상 문화가 있다면 이란에서는 소프레 보자기 밥상 문화가 있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식생활 기질이 배어 있는 문화이다.

    이란인 주식인 빵을 중요시하는 문화인 셈이다. 빵과 음식을 이들은 알라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귀한 선물을 함부로 취급해서 안 된다는 생활혼이 바로 보자기 식생활 문화이다. 빵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고 깨끗한 보자기에 싸서 보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유목민 이동 생활을 하는 경우 천막을 치고 주거 자리를 깔고 그 위에 깨끗한 보자기를 편 후에 음식을 올려놓는다. 이는 음식을 존중하는 동시에 하늘에 감사하는 정신이 스며 있는 문화이다.

    현대식 입식 식탁이 있는 경우에도 이란 사람들은 가족이 모였을 때는 꼭 보자기를 깔고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눈다. 이는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 공동체는 하나라는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프레 문화가 있기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이란 사람만큼 사람 사귀기 좋아하고 인정이 철철 넘치는 민족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바로 보자기를 깔고 음식을 나누면서 주고받는 대화 속에 정이 들어 있고 사랑이 스며 있어 그렇다.

    주태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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