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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청년실업 보도의 사회적 시각- 김상수 경남신문 옴부즈맨

  • 기사입력 : 2009-07-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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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한 시대를 우수 어린 시선으로 노래했던 박인환 시인(1926~1956)의 ‘세월이 가면’이다. 전후 50~60년대 그를 비롯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이 할퀴고 간 폐허의 도시에서 술을 마시고 흘러간 사랑을 노래했다. 가을날 낙엽 지던 공원을 그리워했던 그들을 우리는 흔히 룸펜이라 즐겨 불렀다.

    룸펜(lumpen)은 헤어진 옷을 입은 이로 거리를 헤매는 부랑아라는 뜻이다. 여기에 감성적인 지식인이 사회에 절망감을 느끼고 그 사회 속에 편입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시대적 특수성과 낭만적인 어감이 있던 이 단어는 오늘날 백수(白手)라고 바뀌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하면서도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치부로 등장하고 있다.

    실업 쓰나미 덮치다/서류통과 별 따기, 서러운 지방대생/ 비상구 없는 시험 감옥/지겨운 청춘/부모·주변 기대에 포기할 수 없어/30~40대 젊은 가장이 무너진다/노는 것이 지겹다/100만 백수가장 시대/너무 지겨운 시험 준비로 의욕 상실/실업급여 수급 사상 최대/친지들 기피, 자꾸 딴 세상으로/고용 빙하기.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경남신문에 게재된 실업, 그중에서도 청년실업과 관련된 각종 기사를 정리해 보면서 제목이나 내용에 담겨진 의미를 압축해 적어 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특히 실업은 지난해부터 일반 기사는 물론 사설이나 칼럼 등 오피니언 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코드이기도 하다. 청년실업이 칼럼 등을 통해 시대의 아픔, 삶의 추락, 단절되어 가는 세상, 여러 가지 의미로 재해석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청년실업의 문제에 대해 그동안 신문 방송을 비롯 모든 미디어 매체가 서로 경쟁하듯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경남신문은 지난해 ‘청년실업 눈높이를 맞추자’(2008년 10월 13~17일)에서는 실업 원인 분석에서부터 눈높이 성공 사례, 상생의 취업시장 대안 마련까지 5회에 걸쳐 고용안정 인프라 구축 등 청년실업에 대한 처방전을 보여 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올 들어서도 ‘경제위기에서 살아남는 법’(1월 5~10일)을 비롯 ‘취업, 준비하는 사람의 몫’(4월 1~9일) ‘청년인턴 문제 없나’(4월 14~15일) ‘희망근로 프로젝트2009(6월 1~4일)등 연속 기획 시리즈물로 실업에 대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했다.

    실업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대졸 실업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궁극적인 원인 보도 기피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들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청년실업에 대한 일반적인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논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여겨진다. 다만 이를 우리 모두의 문제, 즉 사회 공동체적인 공감대 형성과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절실하다. 그동안 일반적인 실업 취재 보도의 경우 간혹 ‘경기침체의 당연한 결과’라는 듯 그들을 절대적 취약계층으로 부각시키면서 사회의 양극화 현상만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무능력 집단으로 비추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이라는 신조어가 빈말이 아닌 세상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비관적인 실업대란에 이 같은 신조어도 진화하고 있을 정도다. 이태백이 이퇴백(20대에 스스로 퇴직), 삼팔선(38세에 회사에서 퇴출)이 삼초땡(30대 초반 퇴직)으로 바뀌어 불리면서 사회적 절망, 상실감은 깊어져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언론은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위기 의식을 갖고 그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나침반 또는 조타수 역할을 할 때이다. 청년들의 좌절과 고민은 우리 사회 전체가 흔들림을 뜻하기 때문에 보다 진지한 접근을 통해 문제 의식을 이끌어 내야 한다.

    이런 점을 배제한 채 과거 IMF시절 대합실에 줄지어 누워 있는 노숙자의 사진을 1면에 담거나 ‘노숙생활 체험기’ 등 감상적인 현장 르포기사를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기사화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상수 경남신문 옴부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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