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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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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노인이기를 거부하는 노년- 김현우(아동문학가)

  • 기사입력 : 2009-07-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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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주 마산역에 나간다. 그곳에는 누가 오라고, 모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에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60,70대뿐만 아니라 80대, 심지어 90대까지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재미가 있다.

    그들은 노인이기를 거부한다. “노인? 노인이란 말을 들으려면 최소한 일흔댓은 되어야지!”, “난 노인 대접 받기 싫어. 노인 대접 받기 시작했다면 천대 받기 시작했단 말과 같아”, “난 아저씨가 좋지. 어르신, 할아버지 소리는 듣기 싫어!”

    그들은 노인정이나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가기를 한사코 거절한다.

    동네의 경로당은 좁은 방 두어 개에 토박이 노인네 몇 명이 터줏대감으로 버티고 있기 마련이라 담배도 마음대로 피울 수 없고, 60대는 아예 심부름꾼 청년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가까운 경로당 놔두고 마산역까지 온다.

    노인복지회관은 정말 거창하고 화려하다. 수십 가지 운동기구도 있고 넓은 방에 장기판과 바둑판도 많다. 샤워시설도 되어 있고 노래도 배우고 부를 수 있다. 광장보다 앉을 의자도 많다. 그런데 뭔가 복잡하다. 지켜야 할 것도 많을 듯해 성가시다. 누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그게 부담이 된다.

    그들은 한 시간쯤 걷는 것은 운동이라 여기고 걸어온다. 시내버스 타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건강에 자신이 있노라 우겨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잡이도 잡기 전에 버스가 출발하면 기우뚱 쓰러지려다 겨우 중심을 잡는다. 좌석에 버티고 앉은 어느 누구도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예의는 아예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10리쯤은 보통 걷고,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마산역으로 온다.

    그들의 회합 장소는 여름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다. 그런데 그늘이 절대 부족하다. 둘러앉아 화투나 바둑, 장기를 둘 만한 평평한 자리도 마땅찮다. 넓은 역 광장 중심부는 잘 포장됐지만 그곳에는 햇볕만 내리 쪼인다. 거기서는 술 한 잔 나누며 떠들 수 없다.

    그들은 그 주변 나무 그늘에서 논다. 긴 의자 중간에 장기판을 놓으면 대다수 훈수꾼들은 서서 관전한다. 화단 모서리에 바둑판을 놓아도 대국자는 모로 앉아야 하고 관전자들은 역시 서야 한다. 화투판은 화단 복판 비탈진 잔디밭 위에 골판지를 깔고 자리 잡는다. 무단 점령이다.

    술? 많이 마실 수 없다. 주위의 인심으로 소주나 막걸리 2병을 얻으면 10여 명이 한 모금씩 마셔도 모자란다. 300원짜리 커피가 그들의 주 음료이다. ‘자판기 커피값이 100원이면 딱 좋겠는데!’ 하고 입맛을 다신다.

    밥? 태반은 아침을 굶는다. 물론 아침을 먹고 나오는 양반들도 있지만 그건 마나님이 있기 때문이고, 홀아비들은 이것 저것 귀찮아서 그냥 나온다. 그래서 무료급식소가 있어 고맙다. 형편이 괜찮아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 그곳으로 간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우르르 무료 급식소로 몰려가는데 나 혼자 2000원짜리 밥 먹으러 가는 게 미안해서이다.

    용돈? 호주머니에 몇 천원이야 있다. 요새 희망근로니 노인 일자리니 하는 게 있다지만 몇몇 외에는 가지 않는다. 자존심이 팍팍 상하기 때문이다. 결단코 나는 아직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도움을 주더라도 자존심 세워주면서 했으면 좋겠다.

    건강? 튼튼하다. 이 나이에 기력이 없는 건 당연하다. 어르신 어쩌고 하는 제발 동정적인 얘기는 사절이다.

    그들은 오늘도 역 광장에 나와 하루를 보낸다. 늙었다는 생각, 대접 받을 생각은 결코 없다. 그저 역전(歷戰)의 용사들에게 편히 놀 그늘이나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불편한 긴 의자 말고, 훈수꾼도 앉아서 관전 좀 할 수 있게. 술 한 잔 먹더라도, 마음껏 떠들어도 괜찮을 공간, 그늘 말이다. 거기다 100원짜리 자판기도 누가 인심을 좀 쓰면 금상첨화인데.

    김현우(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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