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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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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악플러와 함께 시낭송을 - 최영아(수필가.시낭송치료사)

  • 기사입력 : 2009-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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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이외수씨가 자신과 가족을 비방하고 모욕한 악플러들을 고소할 것이라 한다. 올바른 댓글 문화의 정착을 위해 출사표를 내겠다는 것이다.

    유명 인사로는 보기 드물게 나이와 권위 등을 내려놓고 네티즌들과 소통을 즐겨왔던 그였기에 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악플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을 많이 목격했으면서도 아직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왜 그들은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남에게 저주와 조롱을 일삼으며 ‘놀고 있는’ 것일까? 법적으로 대응하고 처벌하는 것 외에는 그들의 거칠어진 언어와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해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나는 악플이 그토록 무자비해질 수 있는 이유는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목소리와 귀는 인간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다. 컴퓨터는 우리에게서 그것을 앗아가 버렸고,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생각들을 문자와 기호로 전달하고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의 숨결과 입김을 느낄 수 없는 디지털 신호를 통한 소통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처럼 딱딱하고 사막처럼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동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세상이 못마땅하다고 입을 꾹 닫고 홀로 살아가기로 작정해 버리면 감정 조절 능력을 잃고 자폐적인 삶에 빠지게 된다.

    마음에 맺힌 것이 많으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또 그것이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 자연히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목소리를 숨기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을 전하고 노는 것이 오히려 편해지는 것이다.

    악플러들을 만나 보면 의외로 온순하고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실 속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세상에서 받은 온갖 상처들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낮은 자존감과 패배의식 속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를 외부환경 탓으로 돌려버리고 분노와 적개심을 키웠을 것이다.

    그들은 본래 그렇게 남을 괴롭히도록 태어난 ‘악마’도 아니고, 찾아내어 감방으로 보내야 하는 범죄자들도 아니다. 자신의 아픔을 처리하지 못해 사이버 공간을 떠돌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며, 보듬고 치료해 주어야 할 또 다른 형태의 신경증 환자들이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기술발전과 속도와 효율성의 신화에 취해 그들에게 건강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지 못한 책임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나누어야 할 지식인으로서, 이외수씨는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평정’하고 싶은 것일까? 아마도 끝까지 대결하고 응징하는 것이 그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그는 자신도 말했듯이 진심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싶을 것이고, 지금 그들이 빠져있는 어두운 세계에서 구출해 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문제를 일삼는 학생들에게 처벌 대신 시낭송을 하게 했더니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는 어느 시골 선생님의 얘기를 들려주면서 나는 그에게 제안하고 싶다. 고소를 포기하고 그들을 그 외로운 골방에서 불러내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감성 마을로 초대해 보지 않겠냐고. 내장까지 씻어내려 주는 청청한 공기가 있고, 바람이 스쳐 가면 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는 그 낭만적인 집에서 그들과 마주앉아 시낭송을 해보지 않겠냐고.

    시낭송은 자신의 입과 마음을 활짝 열어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되찾고, 아름다운 언어와 품격 있는 표현들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기억하자. 목소리에는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최영아(수필가.시낭송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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