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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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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씁쓸한 퍼포먼스-이석례(수필가)

  • 기사입력 : 2009-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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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 어느 화백의 갤러리 오픈 장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러 왔으며 시 낭송, 노래, 악기 연주, 행위예술 등 다양한 축하공연이 있었다. 마지막 행사인 퍼포먼스는 ‘행위예술가는 몸으로 짓고, 화가는 그 몸에 칠을 할 것’이라고 미리 설명을 해주었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들이 대부분 추상화 계열의 작품들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낙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퍼포먼스도 그런 모습일 거라고 나는 짐작을 해보았다.

    중앙에 무대가 설치되고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온몸을 하얀 한지로 겹겹이 감은 행위예술가가 등장했다. 그 모습은 누에고치를 연상시켰다. 누에고치에서 실이 풀려나 물레에 감기면 번데기만 남는다. 과연 한지가 찢겨지고 한 겹 한 겹 벗겨지면서 어떤 번데기 모습이 나타날 것인지 궁금했다.

    모든 생명은 껍데기를 깨야 탄생하는 것임을 먼저 보여주었다. 탄생은 다른 것의 희생을 동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탄생은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번데기 같은 알몸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누드 퍼포먼스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했다. 그것도 젊고 아름다운 여자 몸이 아닌 남자 노인의 몸이었다.

    탄생을 보여주는 몸이 탄력을 잃고 고난의 세월을 말해주는 몸이라니… 역설로 표현된 행위예술 작품이라고나 할까. 내 예감은 빗나갔다. 기계문명과 물신사회에서 탄생 자체가 이미 노쇠와 소멸로 직결된 것임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화가는 그 몸에 커다란 붓으로, 심장을 깨우고 숨을 쉬게 하고 하나하나 세포들을 일으켜 세우듯 칠을 했다. 기계에 종속되고 인간소외가 심화되어 가는 오늘날 예술이 그 반작용을 한다는 메시지로 읽혀졌다. 그날 갤러리를 마련해 준 곳은 어느 기업이었다. 기업이 돈을 벌고 그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선진국이라면 경제적으로 부유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참 좋은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퍼포먼스는 무속적인 양상을 띠며 이어졌다. 모든 예술의 시초는 주술적 신앙이었고, 생산 활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원시사회에서 오늘날까지 사람은 예술 세계에 감싸여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녁노을, 빗소리 등 자연이 만들어 내는 예술. 또 예술가들이 창작해 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 그리고 한 사람의 탄생과 그 사람 자체가 바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한한 삶에서 우리는 존재의 깊이를 깨닫고 예술을 통해 영원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런데 현대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예술 작품도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예술가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러나 예술 시장이 점점 더 커지고 상품으로서의 예술품이 예술 세계를 장악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순수하고 고귀한 예술혼을 지닌 예술가라 해도 마음껏 자유로울 수는 없다. 퍼포먼스는 한 마리 나비가 날아가듯이 행위예술가의 힘찬 날갯짓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다소 충격적인 분위기였다. 나는 옆사람 눈치를 보면서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런데 사람은 나비처럼 가벼운 몸으로 허공을 마음껏 날며 자유롭게 살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사람들이 거의 돌아간 뒤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 벌어졌다.

    온몸을 던져 퍼포먼스를 한 예술가에 대한 대접이 부실하다는 항의가 일어났다. 지폐가 흩어지고 큰 소리가 실내음악을 뒤흔들었다. 그림을 감상하고 시낭송을 듣고 클래식기타 선율에 포도주를 음미하던 분위기는 간곳 없고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궁금한 말을 삼켰다. 돈이 그 정체를 숨기고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림도 시도 퍼포먼스도 돈으로 가치를 결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행위예술가로 살아온 자존심은 얼마만큼의 금액으로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것일까?

    ‘돈 액수가 아닐 것이다. 예술 정신과 작품에 대한 대접을 왜 제대로 해 주지 않는 것인가’ 에 대한 항의라고 나는 해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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