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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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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RH 신드롬-이광수(경남문학관 관장)

  • 기사입력 : 2009-06-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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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정년퇴직 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이나 일본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노인 세대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사회복지 정책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접어든 실정이다.

    2008년을 실버산업의 원년으로 정해 놓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더욱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1.14%)로 인하여 머지않은 장래에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됨에 따라 실버 세대를 부양해야 할 생산인력의 짐 또한 더욱 무거워지게 되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으로 실업난까지 겹쳐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50대 후반에 정년퇴직하는 남자의 경우 제2의 인생을 안락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보장책이 미비하기 때문에 백수 신세로 허송세월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이혼이 황혼기에 접어든 50~60대에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경제 능력을 상실한 남편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여성들, 생각하면 괘씸하고 분통 터질 일이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신세가 참으로 통탄스럽다.

    요즘 퇴직한 가장을 거느린 여성들의 가장 큰 고통이 RHS(Retired Husband Syndrom)라고 불리는 ‘은퇴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직장 생활을 접고 나온 남편이 등산 아니면, 온종일 집안에 있으면서 뒤늦게 남편 시집살이를 시키는 게 괴롭다고 하소연이다. 남편이 직장에 나갈 땐 비교적 자유롭게 사생활을 즐겼던 아내가 뒤늦게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까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웃나라 일본의 어느 노인전문가는 남자가 노후에 맘 편하게 사는 법을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우리도 한 번쯤 깊이 음미해 보고 실천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먼저 “남자가 변해야 일본이 산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건다. 그리고 “아내를 웃게 해야 남편이 산다”고 한다. 모든 가정사에서 “아내에게 이기지도 말고, 이기려고 하지도 말 것이며, 이기고 싶지도 않아야 한다”고 한다. 항상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말하라고 한다. 특히 옥시토신이 없는 부부가 많은 한국인들은 대화나 스킨십이 부족하므로 공통적 관심사를 찾아 대화를 즐기고 스킨십을 자주 하라고 권한다. 50대는 배울 나이이므로 새로운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여 뭔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각자 원하던 일이나 취미 생활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피곤하게 할 틈이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부부간에 부딪힐 일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1946~1956년생)가 겪는 정서적 불안감과 소외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정년숙’이라는 황혼 적응교육기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퇴직 후의 삶을 보람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은퇴 학습원’같은 노령자 관리 시스템을 한시 바삐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생 후반전,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길어진 수명만큼 인간다운 노후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남자도 일본의 어느 학자가 한 말처럼 스스로 변해야 산다는 걸 자각해야 할 것이다. 사소한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여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자기 이부자리는 자기가 개어 장롱에 넣고, 아내가 친구들과 외유를 떠나면 며칠이건 너그럽게 허용해야 한다. 하루 세 끼 식사도 아내가 없어도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설거지랑 집안 청소도 알아서 해야 한다.

    이제 이 땅에도 남자의 시대는 가고 여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내를 RH증후군으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하는 남자는 결국 아내로부터 이혼당하거나 버림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는 걸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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