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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노인들의 침묵 - 김상수 (경남신문 옴부즈맨)

  • 기사입력 : 2009-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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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면부지 두 노인 ‘아름다운 동행’.

    전국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기사가 쏟아져 나온 지난 5월 하순 경남신문의 한 면을 차지한 기사(5월 28일 4면)의 제목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이날 부산 70대 노인이 전남 영암서 온 또 다른 80대 노인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봉하마을로 조문왔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면서 현재 노인을 바라보는 대중매체, 즉 미디어의 시각과 해석은 어떤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전후한 노인 관련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동안 노인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이 다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신문과 방송에서 노인은 비생산성, 의존성 등 부정적 요소와 결합한 이미지로 구성돼 그려져 왔다. 여기에 노인은 전 세대 문화를 후세대에 전달하는 기능 및 가족과 사회 내에서 전통적 역할의 수행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한 의무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느새 급속한 핵가족화와 더불어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함정에 처해 있다. 특히 지난 80년대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체제가 무너지고 노인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평생직장이라 여기던 공직사회나 은행에까지 불어 닥친 명예퇴직이란 이름의 구조조정이라든지, 직업 없는 50대 장년층의 90%와 60대의 80%가 일자리를 원한다는 조사 내용, 그리고 외국에 비해 크게 낮은 정년 연령과 복지예산 비율 등은 향후 노인문제의 방향과 심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언론에서는 고령화를 비롯 노인 부양, 소득 보장, 의료 보장 등 여러 이슈를 취급했다. 나아가 고령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분석도 자주 반영했다.

    그러나 노인문제는 흔히 특정계층집단의 문제로 진단되기 일쑤였다. 언론은 노인을 단순히 불쌍하거나 어려운 존재, 혹은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 가정에 부담스러운 존재로 부각시키지 않았나 하는 반문이 드는 것이다. 이는 언론의 취재 보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노인이 문제집단’이라는 의식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노인문제를 사회공동책임이라는 명제하에 주로 다루다 보니 보이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경남신문 1월 24일자 ‘독거노인 배고픈 명절 눈물’이라는 기사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기사에선 설 연휴 기간 동안 도내 무료급식소가 대부분 운영이 중단될 예정에 있어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독거노인들의 어려움이 많아질 것이라는 지적을 했다. 이런 접근 자체는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독자들의 눈에 노인이 그저 불쌍하고 긴급한 도움이나 필요한 어렵고 고독한 처지의 존재로만 그려지기 십상이다. 게다가 이 사회는 노인문제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구성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지난 수십년 동안 언론에서 노인의 이미지는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노인에 대한 모습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화됐으나 신문과 방송은 아직 정확히 이를 비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문제, 질병, 노화 등의 부정적 측면에서 다루었지 새로운 노인상을 전달하는 데 매우 미흡한 느낌이 든다. 현대 노인이 요구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삶의 질에 대한 개선이다. 노년의 보편적인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통해 노인에 대한 새롭고 긍정적인 이미지 부각이 앞서야 한다.

    오늘날 노인들의 대부분은 무섭게 고생했다. 그들의 일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난에 눌리고 독재에 밟히며 자식 키우느라 세월을 보냈으나 이제 지쳐서 초라한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방관해서는 되겠는가. 중산층도 서민층도 아닌 우리 사회의 제4계층이 되어버린 노인들은 그저 침묵하고 있다. 그들의 침묵에 깔린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제 언론은 노인의 역할을 재해석하는 등 노인의 진정한 가치를 사회에 제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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