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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1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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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주의 반차 내고 떠나는 트립 인경남] (3) 산청 경호강 따라 수선사 봄 마중

봄빛 따라 달려 봄… 물빛 따라 즐겨 봄… 산빛 따라 설레 봄

  • 기사입력 : 2024-03-28 21: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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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변도로 타고 봄 기지개 켜는 산청 수선사로 향하는 길
    적벽산 피암터널 웅장한 자태·문익점 선생 흔적도 만나

    꽃봉산 자락과 정상에 소품 같은 정자·기암절벽 등 환상
    웅석봉 기슭 오르니 수선사 연못 정원·주변경치도 한눈에


    봄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산청 수선사가 떠올랐다. 작년 가을 SNS에서 풍경 사진을 본 후 반드시 한 번 가보리라 생각만 하고 미뤘던 그곳. 경호강을 따라 달리는 봄의 강변도로를 누가 마다하랴. 마음이 동하면 일단 떠나고 볼 일이다. 미루면 그 길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다. 가자!



    ◇적벽산 피암터널

    함안과 의령을 거쳐 산청 생비량면의 양천강 강변도로를 달린다. 잡다한 세속적 생각들은 출발과 함께 delete! 지금은 온전히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 길가엔 산수유가 봄빛을 길어 올리고 있다. 가지마다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노랑과 노랑이 화가의 팔레트에서 붓으로 막 찍어낸 듯 화사하다. 장란마을 금호주유소 앞 장란교로 지나 회전교차로를 벗어나자 도산초등학교가 보인다. 춘분 지난 빈 들녘이 연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논바닥의 묵은 밑동에서 새싹들이 돋고 사방의 밑동과 밑동 사이에서 보리싹처럼 봄풀들이 키 재기를 하고 있다. 어디쯤에선 개구리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피암터널과 경호강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피암터널과 경호강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산청 방면으로 좌회전. 그리고 다시 하정교차로에서 함양·산청 방면 우회전이다. 시야는 온통 산이다. 멀리는 아직 잿빛 능선들이 이어지고 있다. 차장을 조금 내렸다. 고용량의 산소를 흡입하는 느낌이다.

    산청대로를 달린다. 대숲이 경호강을 가리고 있다. 얼마만큼 가야 경호강 물줄기를 볼 수 있을까. 단성IC·신안 방면 우측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먼발치에서 적벽산 피암터널 형체가 드러난다. 피암터널의 존재를 모르면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수시로 강변도로를 덮치는 낙석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잠시 정차하고 사진을 찍는다. 마치 암벽에 건설한 견고한 성채를 보는 듯하다. 문명에서 떠나왔는데 자연의 한복판에서 문명의 구조물과 조우라니. 그런데 나쁘지 않다. 중세의 어느 도시를 보는 느낌. 최상의 앵글을 위해 강변 쪽 난간을 가까스로 넘는데 등 뒤에서 달리는 차들이 경적을 누른다.

    적벽산 피암터널 700m 구간은 내부에서 경호강 쪽으로 난 수십 개의 유리 없는 아치형 창 형태로 이어진다. 강의 풍경과 성곽처럼 견고한 창의 이미지가 배타적 하모니를 이루어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묘하게 감각적이다. 터널 외벽엔 산청군의 명소와 산청의 위인들을 그려 놓았고 보행자 산책로까지 있다.

    ◇문익점의 흔적을 찾아서

    홍살문 뒤로 도천서원이 펼쳐져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홍살문 뒤로 도천서원이 펼쳐져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산청대로에서 안봉리·신안리 300m 이정표를 지나 우측으로 접어든다. 도로명이 문익점로다. ‘선유동계곡·수월폭포·도천서원·문익점묘소’ 안내판 방향으로 500m쯤 왔을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7호 도천서원 입구’ 안내석이 있고 옆엔 2단 받침대 위에 직사각형의 높다란 비석에서 ‘三憂堂文益漸先生史蹟址(삼우당문익점선생사적지)’를 읽는다. 길 건너 ‘산청 문익점 신도비각(神道碑閣)’이 있다.

    문익점 신도비각이 도로 옆에 우뚝 서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문익점 신도비각이 도로 옆에 우뚝 서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소나무 숲에 가려진 좁은 길 안쪽으로 100m 정도 진입하자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공간이 나타난다. 홍살문을 지나서 보이는 도천서원(道川書院)의 전경. 좌측엔 도천서원묘정비(道川書院廟庭碑)가 중후한 모습을 갖추고 있고, 우측엔 문중에서 건립한 문익점의 네 아들(중용·중성·중실·중계) 묘비와 제단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병렬해 있다. 그리고 산청 문익점 신도비 안내문 뒤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된 신도비가 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만났던 문익점 선생. 백성을 따뜻하게 하려는 일념으로 목숨 걸고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온 이야기. 차갑고 세찬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가지만 마음은 목화솜처럼 따스해진다.

    삼우당문익점선생사적지 입구./도희주 동화작가/
    삼우당문익점선생사적지 입구./도희주 동화작가/

    ◇그 시절의 아픔, 성심원

    문익점 선생의 흔적을 뒤에 두고 경호강을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강 외쪽 기슭에 성심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풍현마을 굴다리를 벗어나자 성심교 건너 산자락에 성심원이 드러났다.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공간. 그러나 우리는 안다. 전화(戰火)가 이 땅을 쓸고 간 후 열악한 환경에서 대책 없이 번져나갔던 한센병 환자들. 그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마을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럴 때 가톨릭 사제들이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겠다는 거룩한 일념으로 이곳에 ‘성심원’을 세웠다. 소록도를 비롯하여 전국에는 이런 시설이 몇 군데 있었다. 소록도에 다녀온 지 오래됐으나 성심원 앞에 서니 가슴 먹먹했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내가 좋아했던 시인이 있다. 한센병 시인 한하운. 일제시대 꽤 큰 지주 집 아들이었던 그가 한센병에 걸려 가족과 헤어지고 제 발로 한센병 치유시설에 들어갔다. 그의 시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어린 시절의 그리운 산하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다른 이유지만 나그네 역시 어린 시절 그리운 고향을 잃었다. 고향에서 4~5월 보릿대가 올라오면 초등학교 하굣길에 풋보리 한 가닥을 꺾어 보리피리를 불며 밭둑길로 집에 오곤 했다. 보리가 여물기 전 풋보리의 까슬한 부분을 떼어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 알맹이를 추려 씹으면 고들고들한 게 꽤 군것질거리가 됐다. 유년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래서 그의 시 ‘보리피리’를 좋아한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피-ㄹ 늴리리.” -한하운의 〈보리피리〉 전문-

    나그네 고향은 강제 개발로 아예 사라졌으나, 그리운 친구와 가족 그리고 풍경이 그대로 있는데도 천형 같은 병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던 한하운. 자신의 운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받아들이며 한센병 환우 구제사업을 전개했던 한하운.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석가모니의 말씀이 새삼 와 닿는다. 성심원의 높다란 돌담 여기저기 꽃무늬 몇 점이 꽃샘추위에 다가오는 봄을 상징하는 듯하다.

    돌담을 끼고 경호강 변을 서행한다. 강변의 나뭇가지마다 잎눈들이 연두색을 내밀고 있다. 강변 저만치에 이색적인 구조물과 안내판으로 다가갔다. 나루터! 성심교가 완공되기 전(1962~1987년)까지 성심원을 나룻배로 외부와 이어주던 관문이다. 성심교가 두 번이나 유실될 때마다 성심원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고 한다, 세 번째 다리가 1988년 든든하게 완공되면서 나루터는 흔적만 남았다.

    ◇봄, 수선사

    가슴 저미는 ‘보리피리’를 경호강에 띄워 보내고 수선사로 향한다. 친환경로 2720번길 방면으로 우회전 후 친절한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과 우회전의 반복이다. 인생길과 어딘지 닮아있다. 성격 급한 젊은이들에겐 위험신호다. 바쁘게 가려고 가속페달을 자꾸 밟다간 영원히 목적지에 닿지 못할 수 있다.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서 느긋하게 가면 가는 길도 즐겁고 목적지 안착은 보장된다. 그게 나이와 경험이 주는 힘이다.

    수선사 정원이 고즈넉함을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수선사 정원이 고즈넉함을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웅석봉로 133번길. 좌측의 경호강물은 너덜겅 같은 바위들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물거품을 일으킨다. 갈등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 강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마찰보단 갈등을 삭혀가는 진지한 과정으로 읽힌다. 시간이 흐르면 바위는 깎이고 물살은 부드러워져 고요한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산청군 하수종말처리장 표지판에서 좌회전이다. 내리 1교를 지나자마자 공터에 주차했다. 내리 1교의 풍경을 담는다. 우연히 앵글에 잡힌 꽃봉산자락과 정상에 소품 같은 정자와 기암절벽이 경이롭다. 전망대에서 서쪽은 천왕봉, 북쪽은 필봉과 왕산, 남쪽에는 웅석봉, 동쪽에는 황매산·정수산이다. 그리고 두류산과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경호강이 회계산을 안고 산청으로 접어든다고 했다.

    산청 내리1교에서 바라 본 소품 같은 정자와 기암절벽이 경이롭다./도희주 동화작가/
    산청 내리1교에서 바라 본 소품 같은 정자와 기암절벽이 경이롭다./도희주 동화작가/

    작은 천을 낀 오르막길에 ‘수선사 직진’ 팻말이 보인다. 웅석봉로 154번길. 편도 1차로 폭 정도를 두고 좌우에 형형색색의 펜션들이다. ‘修禪寺’ 묵직한 세로 표석이 반갑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웅석봉 기슭을 뒷짐 지고 오르니 수선사 연못 정원과 주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레 구부러진 나무와 결을 그대로 살려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었다. 인연을 맺는다는 뜻으로 다리 입구에 ‘시절 인연’ 목판이 매달려 있다. 나무다리를 따라 연못 가운데 쉼터에서 담소하거나 물레방아까지 걸을 수 있다. 만든 이가 스님인지 전문가인지는 몰라도 미적 감각이 남달라 보인다. 사찰에서 보기 드문 이색적인 연못 정원으로 최근 국내 주요 여행지에 손꼽히고 있다.

    수선사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에 인연을 맺는다는 뜻의 ‘시절 인연’ 목판이 매달려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수선사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 입구에 인연을 맺는다는 뜻의 ‘시절 인연’ 목판이 매달려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나그네도 은근히 인연을 기대하며 연못 위의 다리를 걷는다. 다른 세상에 오니 생각도 달라진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다리가 삐걱대며 귀엣말을 하고 바람이 낚아채 간다. 피고 지는 연꽃 또한 시절 인연이며 나그네가 수선사를 찾아옴도 시절 인연의 한 축이 아닐까.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성찰적 아포리즘에 동의한다. 산청의 물빛, 산빛, 봄빛을 담고 아주 천천히 삭아가는 경호강의 ‘나루터’도 목화솜의 온기를 입고 따뜻한 기억으로 각인된다.

    ※성심원

    성심원
    성심원

    산청군 산청대로 1381번길 17. 1959년 진주 한센인 마을 구생원에서 내부 갈등으로 이주해 온 60여 명이 정착을 시작한 곳으로 ‘육지 속의 섬’이었다. 1995년 정부로부터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받아 성심원과 성심인애원 체제를 갖추고 아픔과 상처의 기억 공간에서 소통과 화합의 치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피암(避巖)터널

    피암(避巖)터널
    피암(避巖)터널

    산청읍에서 진주를 오가는 국도 3호선의 일부로서 시외버스 및 군내버스와 지리산 방문객들이 이용하는 주요 도로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로 해빙기·집중호우·장마철에 인적·물적 사고가 빈번해 292억 원의 사업비로 2018년 6월 착공하여 2021년 6월 정상 개통했다.

    ※도천서원(道川書院)

    도천서원(道川書院)
    도천서원(道川書院)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 177. 경남 유형문화재 제237호. 문익점(1329~1398)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며, 산청군 단성면 목면시배유지 배양마을에 생가터와 손수 심은 은행나무가 있다. 그는 고려말 유학자, 정치인 관료 신분이었지만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들여온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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