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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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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월대보름엔 왜 오곡찰밥을 먹는가- 김영진(전 사천용남중 교장)

  • 기사입력 : 2024-02-20 19: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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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은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까마귀에 제사 지내는 날이라 하여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정월대보름은 한자로 상원(上元)이라 하여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이었다. 정월대보름 하면 오곡찰밥이 떠오른다. 왜 하필 오곡찰밥을 먹는 걸까? 여기에는 전해 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사금갑 조(射琴匣 條)’에 보면 신라 제21대 임금 비처왕 (또는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天泉亭)으로 거둥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어댔다고 한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기사(騎士)에게 까마귀를 쫓아가게 하였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둑 아래에 두 마리의 멧돼지가 싸움을 하고 있어 그걸 구경하느라 기사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리게 되었는데, 조금 있으니 연못(서출지:書出池 -현 경주시 남산동 소재)에서 한 노인이 솟아올라 물위로 걸어 나와 기사에게 한 통의 편지를 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그 봉투에는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이 편지를 읽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신하는 어전에 돌아와 임금에게 봉투를 바쳤다. 임금은 난감하여 생각하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편지를 읽지 않고 태우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日官-천문관측과 점성을 담당한 관리)이 아뢰기를,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庶人)을 이름이고, 한 사람이라 함은 하늘에 태양이 하나이듯, 1이라고 하는 숫자는 나라에 임금님이 한 분이니, 바로 전하(임금)를 말하는 것일지 모르오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하니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의 글을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딱 석 자만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갑을 쏘시오.) 임금은 처소에 있던 거문고갑을 꺼내어 활을 쏘게 했다. 그리고 거문고갑을 열어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두 사람은 궁주(宮主)와 분수(焚修)하는 중으로, 이들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었다. 그 중은 고구려에서 보낸 ‘세작’ 즉 첩자였음이 밝혀졌다. 그로부터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오곡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새카만 오곡밥이 까마귀를 연상시킴은 물론 까마귀들이 물고 가기 쉽게 찐득한 찰밥을 해서 까마귀에 보은했다고 한다.

    따라서 정월에는 이 짐승들 이름이 들어가는 첫 번째 날, 즉 쥐(上子), 돼지(上亥), 말(上午-烏의 동음)의 날에는 특히 조심하고 근신하는 날로 지켜오는 세시풍속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갑진년 새봄의 힘찬 출발을 기원한다.

    김영진(전 사천용남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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