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동화’ 당선소감] 묵묵히 세상 따라가며 이야기 듣겠다
- 기사입력 : 2024-01-01 2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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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겨울비로 촉촉이 젖은 운동장 대신 좁은 복도 끝에서요. 당선 전화를 받고 한동안 먹먹하여 눈물이 났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 허락된 길이 아닌가, 포기하고 접어야 하나 생각했었거든요.
한 아이가 날린 종이비행기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하늘 나비처럼 춤을 추면서 기웃기웃 여기저기 구경하듯이 오랫동안 허공에 떠다니더니 곡선을 그리며 날린 아이에게로 되돌아가더군요. 종이비행기에도 멀리 날리기용과 오래 날리기용이 있습니다. 날렵하여 일직선으로 목적지를 향해 쏜살같이 비행하는 멀리 날리기용 비행기와 달리 오래 날리기용 비행기는 넓고 평평한 몸뚱이로 목적지 상관없이 하늘을 오랫동안 유영합니다.
저는 멀리, 빨리 가기보다는 오래 날리기용 종이비행기처럼 천천히, 묵묵히 세상을 따라가며 이야기들을 귀담아듣고 그것들을 다시 세상에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동화’라는 신화 덕분에 나 자신도 어린 시절 고독과 싸워가며 포기하지 않고 어른이 되었듯, 이야기의 힘을 믿으니까요.
때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동화를 향해 한걸음 인도해주신 선배님들과 묵묵히 함께 걷고 있는 글벗들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제가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신호탄을 높게 쏘아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분들께도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항상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 이효준과 딸 소희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아이들과 함께 또 종이비행기를 날리겠습니다. 이번엔 드넓은 운동장에서,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오랫동안 푸른 창공을 비행할 종이비행기를 접겠습니다. 언젠가 겨울비도 그칠 테니까요.
동화 부문 당선자 이명숙 씨 △1971년생 △서울 거주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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