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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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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누구의 죄입니까?- 이병문(사천남해하동본부장)

  • 기사입력 : 2023-12-05 20: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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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그러나 그 시간은 꿈처럼 찰나로 끝납니다. 주인공 그레이스를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이끌어준 버팀이었던 메리 휘트니가 진심이라고 믿었던 사랑 때문에 너무 빨리 생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캐나다를 들썩이게 했던 살인범 그레이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 ‘그레이스’ 이야기입니다. 그레이스는 “타격을 가한 사람이 진짜 범인이 아니다”라고 상담하러 온 정신과 의사에게 냉소적으로 뱉습니다.

    그레이스의 이 말과 당시 장면은 오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 뉴스의 장면과도 겹쳤습니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쭉 올라가면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까지.

    누가 죄인입니까?

    메리가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주인집 아들. 그는 사랑이라는 허울로 성적 배설하며 임신한 메리에게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라면서 돈 5달러를 툭 던집니다. 메리는 위험과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 중절 수술에 나섰다가 과다출혈로 숨집니다.

    메리를 수술한 의사가 가해자입니까? 아니면 메리를 임신시킨 후 무책임하게 행동한 주인집 아들이 죄인입니까? 메리 자신이 너무 무모했던 것입니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진술을 통해 원인이 문제였다고 지적합니다. 나아가 그 원인을 제거한 행동(결과)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웅변합니다. “내가 이등(이토 히로부미)을 죽인 것도,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한 것이지 결코 자객으로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꾸짖습니다. 안 의사는 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친선을 저해하고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은 바로 이등이므로, 나는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서 그를 제거한 것이다. (중략) 만일 일본의 천황이 한국에 대한 이등의 시정방침이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나를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칭찬하고야 말 것이다. 한국에 대한 양국 간에 영원히 유지되기를 희망해 마지않는다”라고 정당성을 웅변합니다.

    원인과 결과, 그 과정에 개입된 행위. 행위에 대한 공권력 행사. 그것을 모두 살펴 잘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사법부의 판단일 것입니다. 고도로 훈련되고 학습된 정치한 법 논리와 가장 고귀한 인간의 존엄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랜 시간 치열하게 다툰 접점에서 형량이라는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동기, 행위, 결과, 그 모든 과정의 무한한 가능성과 변수를 찬찬히 살펴 관련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입니까? 메리의 죽음,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등. 거짓된 사랑, 무모한 수술로 메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 죽음을 예감하고도 중절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메리 자신…. 국권을 빼앗긴 조선 왕조의 무능, 일제의 강압 통치, 일제 체제에 과잉 충성한 이토 히로부미의 행위, 한일 친선과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젊은 열사의 의로운 행동….

    경남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정 지연, 더불어민주당의 줄잇는 탄핵소추안 발의, 진행 중인 정치인 수사와 재판 등 ‘오늘날 갈등’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인과 결과가 꼬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현명한 독자는 그 유·무죄 다툼을 넉넉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병문(사천남해하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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