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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준희(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23-11-14 19: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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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인생은 고작해야 100년 전후인데 한 번 탄생한 예술작품은 세기를 넘어 지속적으로 그 가치가 있다는 뜻에 공감한다.

    이 말은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테크네는 멀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인생보다 생명력이 긴 예술,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해 굳이 여기서 논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지역과 문화·예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국에서 청년인구 유출이 가장 심각한 경남의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는 이유로 첫 번째 직업(일자리)을, 두 번째 문화·여가를 꼽았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지역 유권자들이 원하는 지역발전 방안 중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 확대이다. 이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민의 갈증이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는 중요한 대목으로 문화·예술 인프라 부족과 인구감소의 인과를 설명해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예술 정책에 좀 더 관심과 지원을 쏟아야 하는 이유이다. 전국 지자체는 지역민에게 문화·예술을 즐길 기회를 제공하고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문화·예술을 발전시켜 나갈 목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주력해 왔고, 전국 지자체에 120개 가까운 지역문화재단이 설립·운영되고 있다. 경남에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을 비롯해 창원·진주·김해·사천·통영·거제·밀양·거창 등에 문화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문화재단은 지역문화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공공문화정책기관으로서 지역민과 문화·예술,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을 연결하는 통로로 그동안 지역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특성 때문에 어느 분야보다 자율성과 독립성,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고 그것이 잘 지켜질 때 지역민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제공할 수 있고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도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국 예술행정가 존 피크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팔 길이 원칙)는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원칙을 통해 정부나 지자체가 시민을 대표한 문화·예술의 후원자로서 그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최근 곳곳에서 이를 거스르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 우려가 앞선다. 일례로 통영시가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를 비상근으로 전환할 수 있게 조례를 개정함에 따라 20년가량 재단에 몸담으며 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를 세계적 반열에 올리는데 기여한 현직 대표가 재단을 떠나게 됐다. 매년 전 세계 음악인과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을 통영에 집중시키는 음악제를 운영한 20년의 노하우를 잃을 위기다. 비상근직의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비상근 대표가 재단 업무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2020년 강제규 창원문화재단 대표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보다 지역민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문화·예술 정책을 행해야 하는 자리에 굳이 정치색을 입혀가며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 자질 부족 논란을 빚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민이 원하는 문화·예술 정책을 펴고 싶다면, 풍요로운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찾아 인구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품격 있는 문화·예술 도시로 자생력을 가지려면 지역문화재단을 지자체의 대행기관·하청기관쯤으로 취급하는 단체장의 잘못된 문화·예술관부터 타파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단체장들이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목적을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이준희(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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