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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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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박정기 대표 활동가

경남 구석구석 찾아다녀요, 나무어르신의 숨은 매력 찾아내려고

  • 기사입력 : 2023-11-01 20: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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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서 태어나 고교 때 진해로 유학
    28년째 조경업… 3대째 가업 이어
    노거수 관련 책 내고 후학 양성도

    10년 전 노거수 찾아다니던 친구와
    동호인 모임 ‘노찾사’ 자연스레 결성
    ‘우영우 팽나무’ 가치 세상에 알리고
    고성·진주·사천 등서 노거수 발굴

    “노거수의 존재는 경이로움 그 자체
    자연유산이자 문화자산·관광자원인
    노거수 지속적 관리·보존 중요”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 활동가가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 위치한 ‘우영우 팽나무’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띠고 있다.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 활동가가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에 위치한 ‘우영우 팽나무’를 올려다보며 미소를 띠고 있다.

    “제가 노거수를 세상에 알렸더니, 지금은 노거수가 저를 세상에 알려줍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사람과 있는 시간보다 나무와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지난달 말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동부마을 팽나무 앞에서 박정기(62)씨를 만났다. 팽나무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뒤 가치가 알려져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지만, 일찍이 이 노거수의 가치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 바로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이자 곰솔조경 대표를 맡고 있는 박정기씨다.

    “제가 이 팽나무를 처음 발견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실은 마을을 400년 넘게 지켜온 노거수를 외지 사람이 처음 발견했다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2014년 12월에 저는 이 노거수를 처음 찾았고, 이듬해 4월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존재보다는 가치, 당시로선 국내 최대 크기의 제원과 우수성에 독특한 공간구조가 가지는 당목 문화 그리고 경관 미학을 알린 것이지요. 물론 존재 자체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요.”

    이날 그가 팽나무 앞에 온 것은 근래 나무의 생육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탓에 걱정이 커서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곳 팽나무를 만난 것은 ‘필연’이라고 믿는다.

    거제에서 태어나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나무만 보고 자랐고,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노래 가사처럼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이솔희VJ/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이솔희VJ/

    그는 지난 1977년 진해고등학교로 ‘유학’을 왔다. “섬 소년의 육지 상륙. 모든 것이 생경했습니다. 가로세로 반듯한 넓은 길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고, 학생들이 자전거 타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도 신기했습니다. 고3 때였던가요, 지금의 의창구 대산면에서 처음 낙동강을 보고는 섬에 없는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경남의 노거수를 찾아다닌 것은 1994년 무렵이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 태어나 땔감 혹은 내다 팔 나무를 했고 어른이 되어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했습니다. 산을 지키는 내 아버지도 그랬고, 당신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그렇게 살다 가셨습니다.” 그가 노거수를 찾게 된 것은 이렇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구인 강창원 활동가는 2010년부터 창원시 노거수를 찾아다녔지요. 2013년 강창원 활동가가 창원시 보호수 전수조사를 시작할 무렵, 같이 노거수를 찾기도 했는데, 그 이후 답사 범위를 넓히면서 다른 몇 사람도 동행해 자연스레 붙은 이름이 노찾사입니다.”

    마침 궁금했던 터. “그렇다면 노찾사는 어떤 단체라 말할 수 있죠?”라는 물음에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규모 있는 대단한 단체이거나 전문가 그룹으로 알고 있거나 환경단체, 시민단체로 소개되기도 하는데요, 노거수 매력에 푹 빠져 시시때때로 노거수를 찾는 소박한 동호인 모임입니다. 한 번이라도 동행하면 회원인데, 활동가로 칭하죠. 현재 대표활동가 4명(박정기, 강창원, 김재은, 김구미)에 활동가 30~40명 정도입니다. 활동가 수가 특정되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 활동한 사람이 있는 반면 한두 번 활동한 사람도 있고, 이렇게 오고 가고 합니다. 회원, 회비, 회장이 없는 ‘삼무(三無)’ 단체라 할 수 있죠.”

    그가 사업체를 경영하는 것도 순리대로였다. “3대째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곰솔조경 앞에 ‘삼대 가업’을 붙입니다. 지금은 나무를 심는 일보다 심은 나무 관리하는 일이 더 많은 시대이니, 예전처럼 조경 공사보다 조경 관리 일을 주로 하고 있고요.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보람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입니다. 제 이름으로 28년째 조경업을 하는데, 매출을 높여 회사를 키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조경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작은 규모로 운영해 일감이 떨어지는 일이 없이 늘 호황이지요.”

    지금까지 노찾사가 찾은 소중한 나무는 비단 북부리 팽나무뿐만은 아니었다. “고성 금산리 팽나무, 진주 장재동 푸조나무, 사천 동림동 팽나무, 남해 난음리 비자나무와 양버즘나무, 창녕 성사리 모과나무, 의령 신포리 느티나무는 노찾사가 발굴했거나, 가치를 세상에 알린 노거수로 큰 주목을 받았죠.”

    그는 “시군 보호수, 시도기념물, 천연기념물 그리고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잦아 잘 알려진 노거수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비지정 노거수 혹은 접근성이 떨어진 곳에 숨겨진 듯 존재하는 노거수를 주로 찾아다녔습니다. 외진 곳을 다니다 여기 북부리 팽나무도 만나게 됐으니 선인선과(善因善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했다.

    지난 2020년 고성 금산리 팽나무를 찾은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박정기 대표 활동가/
    지난 2020년 고성 금산리 팽나무를 찾은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박정기 대표 활동가/

    그에게 있어 노거수가 갖는 의미와 매력은 무엇일까. “노거수는 우선 수령이 가장 뚜렷한 정체성이자 경이로움이고 그대로 매력이지요. 웅장함과 넉넉함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선조들의 애환을 품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큰 그늘 쉼터를 내어 주고 마을공동체 공간을 이루는 자연유산이면서 문화자산이 되는, 요즘엔 관광자원까지 하는 이런 매력 덩어리가 또 있을까요? 기후변화 시대에는 그 효용이 더욱 높기 때문에 저는 ‘잘 관리한 노거수 한 그루, 열 공원(공원 열 개) 안 부럽다’고 말을 합니다.”

    그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2019년 7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국민과 함께 저도 탐방’ 개방 행사 때 팽나무 노거수 해설을 맡기도 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창원시 노거수 생태와 문화를 다룬 ‘창원에 계신 나무어르신’이란 책을 펴냈다.

    그가 기자에게 선물로 건넨 두꺼운 책에는 ‘나무꾼이 쓴 창원의 큰 나무 보고서’라 적혀 있었다. 그는 책 속 저자로 자신을 활동가 외 ‘숲해설가’, ‘생태환경활동가’, ‘재능기부활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가 여태 쓴 책은 두 권인데, 이 책으로 한국환경생태학회 저술상을 받았다.

    박정기씨가 펴낸 ‘창원에 계신 나무어르신’ 책.
    박정기씨가 펴낸 ‘창원에 계신 나무어르신’ 책.

    “저는 경영학 학사에 법학 학사였는데, 작고한 아버님께서 연세가 들어 병환이 생길 무렵 늦은 나이에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경학을 전공했고, 조경업과 그 범위 안에 있는 노거수를 연구해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큰돈을 만지진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람 있는 인생 2모작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지금까지 활동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생태환경부문 지역혁신가 선정(수상)과 2020년 산림청장상, 2021년 문화재청장상, 경남도의회의장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앞으로 2025년을 목표로 경남 노거수를 다룬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후학을 키우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기로 했다.

    “조경과 노거수, 이는 나이와 상관이 없는, 어쩌면 나이가 더 들수록 유리한 분야이니 탁월한 선택이었죠? 요즘은 청출어람 후학을 키우는 것을 큰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끝으로 노거수 보전을 위한 당부도 빠지지 않는다. “노거수 상태나 생육환경이 좋지 않아 보이면 관리 주체, 저 같은 노거수 연구자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거수 바닥, 그러니까 수관 영역(잎이 달린 가지가 차지하는 면적) 아래 땅을 생태적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데크, 정자, 운동기구 등이 아닌 풀이나 키 작은 나무가 자라는 환경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빗물이 스며들지 않으며 뜨거운 복사열을 내뿜고 사람을 위한 시설물이 잔뜩 들어차 있어서는 노거수는 온전히 생장할 수 없죠. 한편으로는 노거수 대부분이 마을나무입니다. 당목, 신목, 수호목 인식이 있는 노거수는 보존의식이 높기 때문에 당산제, 동신제 등 제례의식을 지원하거나 노거수 답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등 문화적 이용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노거수는 생태적으로 관리하고 문화적으로 이용할 때 지속 가능합니다.”

    글= 김재경 기자·사진= 이솔희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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