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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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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기다립시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의 브레이크 타임- 진혜진 시인(201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기사입력 : 2023-09-07 19: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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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할 게 없다는데 변한 게 많아 생각 없다는데 생각이 많아 닿을 수 없이 멀어진 거리이다 지금은.

    다 안다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그때나 이때나 들어설 수 없는 장벽이 둘러쳐져 있다. 우리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여럿이다.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깊은 골짜기 같기도 하고, 휘몰아치는 파도 같기도 하고, 사자 몇 마리가 으르렁거리는 심장의 방이 있는 것 같아 서로의 절벽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바라는 것이 많아 사람도 세상도 겹의 겹이 많은지도 모른다.

    편견으로 세상이 열렸으니 한쪽으로 치우치니까 사랑이 되고 더 치우치니까 미움이 되는데 서로의 편견을 흔들어 깨우는 일 할 수 있을까?

    오늘처럼 사람이 간결해질 땐 막연한 바람이 소용돌이칠 것 같아 사람과 전쟁, 사람의 전쟁으로 오늘의 우리를 가장 많이 소비하게 된다.

    우리의 긍정이 달라 되돌릴 수 없는 말이 한계인 날, 햇살도 한계, 내가 숭배하는 단어들도 한계. 당신의 외곬인 정치적 신념도 한계, 안녕도 한계다. 신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시간이 흩어진다. 더 철저하게 외로워야겠다.

    누군가는 순순히 어둠의 문턱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하였고 누군가는 무심(無心)도 오히려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고 한다. 서로를 편애했던 시간들이 다시 한번 틀렸군요.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고. 긴 장마였고, 태풍이었고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새 9월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침묵은 불편해지기도, 말을 하면 우스워지기도 한다.

    코끼리의 상아는 몸이 자라는 것을 스스로 조절한다는데, 질풍노도하는 사람의 말들은 조절이 없다. 말은 각을 가졌고 각은 고통, 고통은 앞뒤가 극명하다. 사람이여, 당이여, 일본 오염수 방출이여, 공공의 적은 누구의 누구일까?, 시인인 나는 무엇이 가깝고도 절실한 한마디일까?

    빛과 그림자가 대비되듯 어떤 말은 우리의 전쟁이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우리의 평화이기도 하다. 오해는 오해로, 미움은 미움으로, 갈등은 갈등으로, 그리운 것들은 그리운 것들끼리. 저 담배연기처럼 뭉쳤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뭉친다.

    우리는 미래를 꿈꾸었지 갈등을 떠받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과거도 다가오는 가을단풍도 우리의 기적이니까.

    누구든 더 절절해서 더 아픈 것, 꽃이 담벼락에 업힌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담벼락이 밟혔다고 한다. 내가 나로 고요해질 때까지 당신이 당신으로 활짝 필 때까지, 기다립시다. 전쟁과 꽃은 하나가 되기 위한 시원(始原)이고 두 개의 운명이니까.

    그럼 다시! 우주적인 안녕으로!

    진혜진 시인(201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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