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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87) 수어지친(水魚之親)

- 물과 물고기처럼 친밀한 관계

  • 기사입력 : 2023-07-11 08: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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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2년 3월 21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비서가 쪽지 하나를 건네주자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제2차 경제개발계획에 대한 종합평가회로 대통령이 없이는 진행될 수 없었다. 경호원들이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대통령은 화장실 바닥에 퍼져 앉아 “내가 임자를 죽였어”라고 탄식을 섞어가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있다가 지난 1월 몸이 안 좋아 사임한 김학렬(金鶴烈) 장관이 겨우 49세로 일생을 마친 것이었다.

    김학렬은 1923년 고성(固城)에서 태어났다. 고성초등학교, 부산상업중학교를 거쳐 일본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졸업했다.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외교과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952년 미국 유학을 떠나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1955년에 돌아와 재무부 공무원으로 복귀하여, 제2공화국 때 재무부 세제국장 등으로 있었다.

    박정희 소장이 1960년 김학렬의 실력을 알아보고 찾아와 “어떻게 하면 장면 정권의 부진한 경제상황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라며 그 대책을 물은 적이 있었다.

    1961년 이후 박정희의 주도로 경제개발에 전력을 쏟을 때, 경제기획원(經濟企劃院)을 출범시켰다. 김학렬은 경제기획원 출범 때부터 참여하여 1963년 경제기획원 차관, 대통령 경제수석 등을 역임한 뒤, 1969년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되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판단력과 탁월한 추진력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확실히 얻었고, 대통령도 무슨 일이든지 생각만 말하면 척척 해내는 그를 매우 신임했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화학공업 육성 등이 모두 그의 아이디어였다. 1967년 경제기획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컴퓨터를 사용하였는데, 그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다.

    아침에 청와대 들어간 장관이 돌아오지 않아 장관 비서가 전화를 해 보면, “각하하고 식사하고 계십니다”라고 답을 했다. 오후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하면, “아직 대담 중이십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대통령과 생각이 같았고, 의견 교환할 것이 많았다.

    대통령과 술도 자주 했는데, 대통령이 가끔 그의 집을 방문하여 같이 마셨다. 장관 부인이 대통령을 내려다보면서 “몇 잔 하고 말 것이지, 왜 자꾸 술이냐?”고 핀잔을 주면, “당신 부군은 내 경제 과외선생이오. 학생이 선생님 집에 오는 것이 뭐 잘못됐소?” 하며 가벼운 시비가 붙곤 했다.

    유비(劉備)가 떠돌아다니다가 제갈량(諸葛亮)을 얻었다. 그 이후 매일 제갈량과만 이야기하니 의형제인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을 널어놓았다. 유비가 두 사람에게 “내가 제갈량을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불평을 하지 못했다.

    오늘날 김학렬 장관처럼 대통령과 마음이 통하는 장관이 몇 명이나 될까?

    * 水 : 물 수. * 魚 : 물고기 어.

    * 之 : 갈 지. …의 지. * 親 : 친할 친.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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