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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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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깍두기- 김경애 동화작가(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기사입력 : 2023-07-06 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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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트에서 무를 싸게 팔기에 몇 개 사서 깍두기를 만들었습니다. 저녁으로 갓 담근 아삭아삭한 깍두기를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엄마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놀 때는 꼭 깍두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더니, 애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더군요. 깍두기는 그냥 반찬 아니었냐는 표정.

    “엄마 어렸을 때는 항상 깍두기가 있었단다. 다 같이 놀다가 팀을 나누어서 놀 때, 누구 하나가 남으면 그 친구는 깍두기가 되었고, 몸이 좀 불편한 친구도 꼭 함께 놀자고 하면서 깍두기로 해 주었고, 그렇게 그때는 모든 걸 함께 했단다. 팀을 나누어서 놀다가 이기게 되면 함께 기뻐하고, 혹 깍두기 때문에 우리 팀이 지게 되더라도 패배의 책임은 묻지 않았단다.”

    몸이 허약했던 저는 어렸을 때 활동적인 놀이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반장 순영이가 같이 놀자고 했습니다. “내가 하면 질까 봐.” “괜찮아, 깍두기 하면 돼.”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좋은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깍두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저 때문에 놀이 못 하겠다고 빼고 하자고 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지만 저 때문에 지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순영이가 그것을 막아주었습니다. “너한테도 그랬으면 좋겠어?” 순영이가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순영이는 공부도 아주 잘했고 집도 부잣집이었습니다. 순영이는 항상 친구들을 배려했고, 무얼 하든 친구들과 함께하려고 했습니다. “괜찮아. 깍두기잖아.” “괜찮아. 우리가 도와줄게.” 순영이가 잘하는 말이었습니다. 순영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였고, 올바른 리더였습니다. 약한 자에게 약하고, 강한 자에게 강한 친구였던 순영이. 순영이는 어린 날 저에게 최고의 친구였습니다.

    지금도 순영이는 저랑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바로 순영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순영아, 집에 있니?” “나 깍두기 담갔다. 좀 줄까?” “정말? 나 주면 너는 뭐 먹고?” “괜찮아. 다시 담그면 돼.”

    저는 옛 생각이 나서 오늘 담근 깍두기를 몽땅 김치통에 담아서 순영이에게 주었습니다. 원래 깍두기는 김치 담그다가 남은 무 조각을 모아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양새도 안 예뻤다고 합니다. 깍두기는 그렇게 생겼나 봅니다. 저는 깍두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밥 먹을 때 깍두기가 없으면 허전할 정도입니다. 저한테는 아주 소중한 반찬이랍니다.

    아이들이 놀 때 깍두기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어린 날의 깍두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라는 소중한 공동체를 안다면 나머지 하나를 홀로 둘 수는 없겠지요. 온갖 지혜를 모아서 함께 할 때 더 빛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혼자 노는 친구가 있으면, 꼭 같이 놀고 모르는 척, 못 본 척하지 마라.

    김경애 동화작가(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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