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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임시 신생아 번호-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 기사입력 : 2023-07-06 19: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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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시 신생아 번호, 신생아의 생년월일과 성별을 표기한 7자리 숫자다. 병원에서 출산 직후 신생아에게 놓는 B형간염 예방접종의 기록이기도 하다. 세상에 태어나 일곱자리 숫자로만 기록된 채 사라진 아이들이 연간 200~3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거제의 한 아이는 생후 5일 만에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창원의 한 아이는 생후 76일 만에 영양실조로 숨졌고, 수원의 한 남매는 자신의 집 냉장고 안에서 발견됐다.

    ▼정부가 ‘출생통보제’를 통해 출생신고 전 사라지는 소위 ‘유령 아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의료기관장이 아이의 출생정보를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고, 21대 국회에서도 15개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쟁에 묻혔던 안건이다. 일곱 자리의 숫자로만 부를 수밖에 없는 아이들, 부모도 세상도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이 ‘제2의 유령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망을 만들어 준 셈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일은 어른의 도리이자 책무다. 현상을 더 깊고 넓게 들여다보고 더 안전한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할이다. 신생아번호도 없이 병원 밖에서 태어날 아이들과 불법으로 출산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의 부모들까지 고려한 심도 있는 정책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 ‘브로커’는 소영이 아이 우성을 베이비 박스에 버리면서 시작된다. 소영은 다시 우성을 보러 가지만, 이미 인신매매 브로커 일당의 손에 아이가 넘어간 뒤다. 소영은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감정으로 브로커 일당과 함께 우성의 양부모 찾기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한 번 안아주지도 않던 소영은 어느날, 어두운 방 안에서 읊조린다. “우성아, 태어나줘서 고마워.”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모두 고마운 존재다. 부모가 원하든 아니든 태어난 한 생명에 대해 마음껏 고마워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 본다.

    조고운(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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