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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마산방어전투 옥녀봉 유해발굴 현장

“마산 지켜낸 영웅들, 꼭 유족 품으로”

  • 기사입력 : 2023-06-04 20: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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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39사단
    매일 산길 올라 흙먼지 속 구슬땀
    “내 가족 찾는다는 심정으로 발굴
    선배 전우들 가족 곁으로 모실 것”


    “유해 흔적을 보니 마산방어전투가 정말 치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배 전우들을 꼭 유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옥녀봉.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9사단 장병들은 마산방어전투 당시 전사자들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10여명의 장병들은 흙먼지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하나의 유해와 유품이라도 더 찾기 위해 눈을 떼지 않았다. 군데군데 유품이 나온 곳에는 색 깃발을 꽂아 표시를 해두었다. 유해가 발굴된 곳은 손상을 막기 위해 주변을 추가로 파내 확장 조사 또한 진행됐다. 한편에서는 체를 통해 흙과 낙엽 속에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를 유해를 찾고 있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옥녀봉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9사단 장병들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옥녀봉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9사단 장병들이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마산방어전투 격전지 중 한 곳인 옥녀봉은 전투가 벌어진 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포탄 흔적이나 미군, 북한군 참호들이 남아 있어 당시 참혹한 모습을 보여줬다.

    작업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39사단 장병들은 매일 산을 올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발굴작업을 펼치고 있다. 작업은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됐으며 언제 끝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다. 이들은 등산로조차 없는 비포장 산길을 올라 땡볕에서 선배 전우들 유해를 찾는다. 점심은 옥녀봉에서 도시락을 통해 해결 중이다.

    현재까지 발굴 작업을 통해 유해와 탄환, 전투화 깔창 등이 발견됐다. 이곳에서는 유해가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지 않은 ‘부분 유해’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수류탄이나 폭격으로 인해 신체 일부가 찢기거나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근재 유해 발굴팀장은 “옥녀봉에서 적을 막아야 마산을 지킬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도 그때 사용했던 참호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을 정도다”라며 “폭격이 많았고, 고지전이었기에 부분 유해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그 뜻은 이 전투가 정말 참혹하고 치열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병들은 보존 상태가 좋은 유해를 발굴하다 보면 당시 상황이 예측된다고 전했다. 몸을 움츠리거나 총탄을 맞은 부위를 감싸는 등 자세가 그대로 남아 있어 전사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 8팀 김건환 상병은 “지금도 오르기 힘든 산길을 전쟁 당시 무거운 중기관총을 들고 고지를 찾고 지키기 위해 싸우셨을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가슴 아프다”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굴해 가족들 곁으로 모셔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상병 오른쪽 가슴에는 ‘그들을 조국 품으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박나현 39사단 창원대대 중위는 “외종할아버지께서도 경찰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하셨는데 아직 유해를 찾지 못했다”라며 “내 가족을 찾는다는 심정으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마산방어전투 지역에는 올해까지 23회 발굴 작업이 진행됐으며 총 88구가 발견됐다. 하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 신원 확인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유가족 DNA 시료 등록이 안 됐기 때문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유가족 시료가 확인돼야 유해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유해를 찾아도 시료가 없다면 유가족과 연결이 안 된다”면서 “가족 중 6·25전쟁 참전용사가 계신다면 꼭 보건소에 가셔서 시료 채취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마산방어전투는 지난 1950년 8월 3일부터 9월 16일까지 45일간 마산 진전면 일대에서 한미 동맹군과 북한군 간 벌인 전투다. 마산과 당시 임시수도인 부산까지는 직선거리로 40~50㎞에 불과했다. 당시 북한군에 국토 대부분을 빼앗겨 이 전투에서 패하면 마산은 물론 부산마저 함락될 위태로운 상황. 전쟁 승패를 가를 수 있는 ‘막느냐 무너지느냐’의 중요한 전투였다. 결국 마산방어전투에서 승리해 부산을 지켜내고 국군과 UN군이 재정비할 시간을 주면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해 전세를 역전시켰다.

    글·사진= 박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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