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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 2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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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신- 최영욱

  • 기사입력 : 2023-04-06 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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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다가 저기에 놓인 걸까 저울 위에 올려 있는

    운동화 한 켤레

    저울 눈금이 파르르 떨다 멈춰버린 지점

    꼭 구백 그램

    저 가벼움에 얹혀 다닌 길들은 지워지고

    밟히고 짓이겨진 꽃들이거나 구르던 이끼 낀 돌멩이거나

    오지 않는 사람에게로 뛰다 디딘 허방이거나

    잘 저장된 밑창의 흔적들


    마른 길 환한 길 더러는 바른 길

    비행운처럼 옅어졌다 지워지고

    내 발길에 채여 스러졌던 당신이거나 꽃이거나

    비음으로 날을 세우는

    꽃 터지는 밤


    헛발질은 늘 요란스럽고

    꽃이 터져 자꾸만 터져 그나마 살만한 봄밤이다


    ☞ 내 온몸을 지탱하고 떠받쳐줬던 신발. “운동화 한 켤레/ 저울 눈금이 파르르 떨다 멈춰버린 지점/ 꼭 구백 그램” 오리 알 열 개의 무게다. 뒤뚱거리며 걷던 오리의 알 열 개의 무게로 약 그 수십 배에 가까운 몸을 지탱해왔다.

    “밟히고 짓이겨진 꽃들이거나 구르던 이끼 낀 돌멩이거나” 내가 잊혀버린 길의 기억들이 “잘 저장된 밑창의 흔적들”이 “비행운처럼 옅어졌다 지워지고” 저울 위에 달랑 얹혔다.

    “저 가벼움에 얹혀 다닌 길들은 지워지고” 나의 헛발질에 “비음으로 날을 세우는/ 꽃 터지는 밤” 진창을 구르는 내 삶 같아서 마음이 찡하지만 그래도 “꽃이 터져 자꾸만 터져 그나마 살만한 봄밤이다” 신발을 신(神)같이 모셔야겠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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