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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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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인생은 타이밍- 윤성희(고전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 2023-02-20 19: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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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배달을 받았다. 잠시 놀랐지만 곧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혼기념일에 매년 살아온 횟수만큼 노란 장미를 받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 약속을 스물일곱 번째 지키는 중이었다.

    더 큰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변치 않는 마음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을 소홀히 하지 않는 그 성실함이 아마도 우여곡절 많은 결혼생활의 오르막길을 손 놓지 않고 걸어가게 만든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도 섬기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보니 작은 것의 큰 힘을 느낀다.

    삶에는 매 순간 타이밍이 중요하다.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복잡한 삶 속에서 이 작은 것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지 모른다. 수사학적 화려한 언변이나 과분한 선물보다 타이밍에 맞는 인사, 칭찬, 격려, 배려, 용서가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니 말이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민족들의 관습과 일화들을 모아 탐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인간들의 행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위대한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을 담아 기록을 남긴 것이다. 특히 페르시아가 거대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키루스 왕의 에피소드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할 때 주변의 눈치만 살피던 왕들이 뒤늦게 복종의 뜻을 키루스에게 전했다. 그때 왕은 “내가 피리를 불 때는 너희들은 나와서 춤추려 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며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을 그들에게 명확히 알려 주었다.

    그와는 반대로 뤼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키루스의 정복 앞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굴복한다. 덕분에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목숨까지도 지켜낸다. 역사를 헤게모니의 투쟁으로만 바라보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반복이 없다. 지나간 것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기회도, 사랑도, 인연도 인생은 타이밍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윤성희(고전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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