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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산방어전투- 정규헌(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3-02-12 19: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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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 여름, 마산은 위기 속에 있었다. 기습을 감행한 북한군은 약 한 달 만에 무서운 속도로 남진해 마산 현동까지 도달해 있었다. 북한군이 7000명, 이에 대항할 국군은 1000명 남짓이었다. 경북 상주에서 미25보병사단이 급히 합류했다. 이것이 6·25전쟁 당시 마산을 빼앗으려는 북한군과 이를 막으려는 한미동맹군이 벌인 ‘마산방어전투’의 서막이다.

    마산방어전투는 1950년 8월1일부터 9월14일까지 한 달 반 동안 마산 진전면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그 치열함은 진전면과 함안 여항면 사이에 위치한 서북산의 주인이 19번 바뀌었다는 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동맹군이 고지를 점령하면 북한군이 빼앗고, 다시 이를 포격해 동맹군이 빼앗는 고지전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이때 미군함포와 네이팜탄으로 나무가 모조리 뽑히고 산 높이가 깎여 미군들이 서북산을 ‘늙은 중 머리 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전사자 수는 5000명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마산방어전투는 6·25전쟁사에서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낸 칠곡 다부동, 창녕 박진전투와 같은 주요전투의 위상에 놓이지 못했고, 재야학자들과 진전면 주민들 사이에서만 구전처럼 회고되어 왔다. 미군주도의 전투는 국내기록이 희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 전투는 ‘마산에서 직선거리 50㎞ 남짓인 임시수도 부산을 지켜낸 전투’라는 의미에서 재론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낙동강방어선 최남단에서 임시수도를 방어하고, 국군과 UN군의 재정비 시간을 확보해 인천상륙작전을 가능케 한 전환점으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 전투를 잊지 않은 이들도 있다. 마산방어전투 개전 초기 해병대가 진동에서 북한군 정찰대대를 격파한 ‘해병대 진동리지구 전투’를 기념하는 사업을 해병대경남창원시마산(연합)전우회가 73년째 꿋꿋이 이어오고 있다. 2021년에는 마산방어전투기념사업회가 출범했고, 지난해에는 창원시가 국비사업으로 기념관 건립을 요청하는 등 행정차원의 재평가 움직임도 포착된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2023년, 이 같은 움직임의 뚜렷한 가시화를 기대해본다.

    정규헌(경남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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