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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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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꼭꼭 씹어 책 읽기- 박혜정(한국독서문화경영연구소)

  • 기사입력 : 2023-02-01 19: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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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명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고 내 입으로 뱉는 말인데 내 것이 아닌 아이러니. 독서 모임에 첫발을 내디뎠던 날을 잊지 못한다. 평소 말 좀 한다 생각했던 나는 그곳에서 내 실체를 만나고야 말았다. 종잇장처럼 얕은 지식은 금세 티가 났고, 나의 논리는 논리가 아닌 주관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원칙과 기준 없이 무작위로 욱여넣은 정보들을 쏟아내며 내 말의 무질서를 알게 되었다. 부지런한 입, 논리 없는 소리, 알맹이 없는 지식. 열심히 책을 읽고 있지만 내가 없는 독서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중적인 ‘나’를 마주했다. 모면을 위한 대응책으로 사용했던 책과 말은 결국 자가당착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 삶이라는 질문 앞에서 선택한 책과 독서모임. 누적된 책만큼 커지는 성취감은 맹목의 독서에 빠지게 했고, 나는 앵무새가 되어있었다. 필터 없는 수동적인 책 읽기는 내 세상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정리되고 단순화될 줄 알았던 세상은 책을 만나 더 소란스럽고 복잡해졌다. 내 삶을 희미하게 만드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토론의 농도는 짙어졌으나 나는 내 존재의 가벼움만을 느낄 뿐이었다.

    지식의 역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매몰될 수밖에 없다. 매몰된 정보에 기댄 말과 생각은 결코 나를 삶의 주인으로 세우지 않는다. 생각 없이 받아들인 정보, 학습된 지식이 내 삶을 채우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귀찮아 잠시 내어준 생각은 어느새 주인이 되어 원치 않는 삶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내가 받아들인 지식과 학습된 정보의 허점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한다. 글 주워 담기가 아니라 적극적 책 읽기를 해야 한다.

    씹어 삼킨 글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얻은 정보에 나의 철학이 입혀질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정보와 지식이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글은 삶이 되고 삶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다.

    무지의 축복을 자각하고, 무지의 혁명을 삶으로 녹여낼 수 있을 때 누구든 소크라테스가 될 수 있다. 플라톤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박혜정(한국독서문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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