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경남시론]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기사입력 : 2022-12-27 19:18:59
  •   

  • 연말 송년회 등에서 유독 ‘이 나이에’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이 나이에’는 어중간한 중늙은이들이 스스로 늙었음을 자조할 때, 혹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 열정이 식었음을 자인할 때 쓰인다. 친구들에게서 들으면 온몸의 김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 친구들에게 최근 내가 자극 받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 무려 95세나 된 할머니 가수가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쿠바 출신 앙헬라 알바레스는 1962년 쿠바 혁명 때 미국으로 와 청소부 등 힘든 일을 하며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해 지난해에 비로소 첫 앨범을 냈다. 그 수상 소감의 마무리 말이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늘 싸웠습니다. 내가 보증하지요.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지난주에 나훈아의 데뷔 55주년 공연을 보았다.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내에게 이끌려 공연을 처음 보고는 그가 좋아졌다. 2시간 넘게 쉼 없이 뛰고 굴리며 청중들을 열광시키는 그의 체력과 열정, 팬 서비스 정신은 빈틈이 없었다. 그의 나이를 확인하니 47년생의 상당한 고령이다. 정작 놀라운 것은 여러 신곡들이었다. 그 나이에도 식지 않는 창작 열정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 대부분 은퇴했기에 모임의 분위기가 다소 나른해진 느낌이다. 그런데 몇 년 전 대기업을 정년퇴직한 한 친구만이 유독 볼 살이 쏙 빠지고 눈빛이 형형하다. 그의 강렬한 젊음의 에너지가 심상치 않아 물어보니, 무려 35일간의 노르웨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것도 암 투병 중인 아내를 데리고. 렌터카를 타고 1만 킬로가 넘는 여정을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며 돌아다녔고, 그 보고 느낀 것들을 블로그에 생생히 기록으로 남겼다. 블로그에 남겨진 그 북유럽 대자연의 강렬하고도 황홀한 장면보다, 그런 여행을 준비하고 결행해낸 그의 젊음과 사랑이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호서대 설립자인 고 강석규 박사가 95세 되던 해에 쓴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라는 큰 울림의 글이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분은 우리의 ‘이 나이’에 은퇴하시어 103세에 돌아가셨다.

    위 이야기들은 최근에 좀 느슨해지려는 나를 호되게 일깨워주는 죽비가 되어 주었다. 가끔 ‘이 나이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친구들에게 엄한 타박을 놓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 말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친구들에게 그리고 특히 나에게, 위 이야기들에 더하여,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보게. 우리 나이는 누가 강제로 떠먹인 게 아니니 억울할 것도 슬퍼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 나이는 우리가 잘못 살아온 벌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남아 쟁취한 보상이며, 먼저 떠난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특권이라네. 지금껏 죽기 살기로 달려온 것은 이 나이에 이르기 위한 것이지. 우리는 이 나이를 위해 평생을 달려왔네. 그리고 언젠가 닥치게 될 미래의 ‘이 나이’를 위해 다시 달려야 할 출발점이라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