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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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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연필- 주재옥(편집부 기자)

  • 기사입력 : 2022-11-10 19: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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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작아 / 손에 쥘 수도 없는 연필 한 개가 / 누군가 쓰다 남은 이 초라한 토막이 / 왜 이리 정다울까 // 욕심 없으면 / 바보 되는 이 세상에 / 몽땅 주기만 하고 / 아프게 잘려 왔구나 // 댓가를 바라지 않는 / 깨끗한 소멸을 / 그 소박한 순명을 / 본받고 싶다 // 헤픈 말을 버리고 / 진실만 표현하며 / 너처럼 묵묵히 살고 싶다 / 묵묵히 아프고 싶다.’ 연필의 삶을 인생에 빗댄 이해인 수녀의 시 ‘몽당연필’의 전문이다.

    ▲필기도구는 2000년 전 그리스인들이 둥근 납덩이로 노루가죽에 기호를 표시한 것이 시초다. 연필이 필기도구 역사의 분기점을 맞은 건 1564년. 영국의 한 참나무가 폭풍우에 뿌리째 뽑히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흑연이 발견됐다. 영국인들은 흑연을 나무쪽에 끼우거나 실로 감아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 화학자이자 화가인 콩테가 흑연과 점토로 만든 심을 고온에서 굽는 기술을 개발, 쉽게 부러지지 않는 필기구를 완성했다. 오늘날 연필은 바로 이 콩테의 제조법을 개량해 실용화한 것이다.

    ▲연필하면 소설가 김훈을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글쓰기 원동력은 ‘손’에 있다. 여전히 연필을 깎아 원고지에 글을 새긴다. 그는 “연필로 쓸 때 온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책상 위에는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쌓인다. 이 방식 안에 삶에 대한 직접성이 살아있다. 이 느낌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라고 했다.

    ▲‘금일(今日) 심심한 사과를 드리면서 사흘(3일)간 무운(武運)을 빈다.’ 최근 인터넷상에선 문해력 논쟁을 일으킨 단어를 조합한 글짓기가 한창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미디어 환경이 ‘문맥을 파악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연필을 쥐고 쓰는 것보다 디지털 기기로 검색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이 됐다. 사각사각 연필이 말을 건네던 때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주재옥(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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