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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大韓國人 安重根- 차상호(자치사회부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22-11-06 1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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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5일. 딸아이가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곁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독도의 날’이라고 먼저 대답한다. 딸아이가 또 묻는다. 내일은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도대체 무슨 날이지? 고민에 빠진다. 정적이 길어지자 딸아이가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라고. 심지어 마침 그때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고 있었다. 1910년 그날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소설 ‘하얼빈’을 다 읽지는 않았다. 뮤지컬 ‘영웅’에서 ‘누가 죄인인가~’를 외쳤던 그 부분이 남은 것 같다.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와 의거 전 안중근의 삶을 번갈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점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도 참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왼손 약지가 잘린 안중근 의사의 낙관만 기억할 뿐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계기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지.

    ▼얼마 전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잊혀진 이야기 역사가 되다-하와이 이민 1세의 묘비로 본 삶의 궤적’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에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안중근 의사의 유묵 2점이 특별 전시됐다. 그중 하나가 ‘임적선진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 적을 맞아 앞장서 나가는 것이 장수의 의무라는 것이다. 유묵 아래쪽에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 서명과 함께 왼손 약지가 잘린 안 의사의 낙관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체포·수감돼 재판을 받을 당시 하와이에서 어렵게 이민생활을 하던 동포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안 의사의 재판 변호사 비용 등을 조달하기 위한 의연금을 모았고, 25센트씩 혹은 몇 달러씩 모은 의연금이 2965달러에 이르렀다. 그들에게 안 의사는 어떤 존재였을까. 10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유해도 찾지 못한 지금 우리에게 안 의사는 어떤 존재일까.

    차상호(자치사회부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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