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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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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지식시장의 시황-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2-07-10 20: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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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바 고급 학문인 철학의 폐습 중 하나로 어려움과 복잡함을 손꼽을 수 있다. 혹자는 그런 것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건 절대 칭찬할 일은 아니다. 어려운 언어에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니 일단 ‘이쪽’보다 ‘저쪽’의 무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잘 모르고 말하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학문적 언어는 접근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철학의 미덕 중 하나로 손꼽아야 할 것이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로 평가되는 하이데거는 철학의 근본 주제인 ‘존재’라는 것을 ‘단순한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엄청나게 어렵고 복잡한 저 불교조차도 ‘펼치면 무한, 접으면 한 줌’이라고, 팔만에 이르는 대장경도 결국 저 한 바닥 반야심경 안에 다 축약돼 있고 그마저도 ‘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 혹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 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한 문장 안에, 아니, 심지어는 ‘도(度: 건너기)’라는 한 글자 안에 다 수렴될 수 있다. (기독교도 ‘회개’나 ‘사랑’에, 공자 철학도 ‘바로잡는다(正)’에, 소크라테스 철학도 ‘(제대로) 안다’는 한 단어 안에 다 수렴된다. 심오한 그 철학들도 의외로 단순한 것이다.

    그런 단순화를 적용해서 말하자면 세상에서 수행되는 인간 행위의 대부분이 실은 다 ‘장사’라는 것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만들어 다른 누군가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행위가 곧 장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이 세상의 곳곳이 다 시장인 셈이다. 이른바 ‘시장주의’라는 것은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 철학적 개념이 된다. 상품이 좋으면 소비자(고객)의 선택과 지불을 받고 상품이 신통치 않으면 외면을 당한다.

    강의나 책의 형태로 팔리는 이른바 ‘지식’도 그런 점에서는 일종의 상품에 해당한다. 전공도 교양도 다 해당된다. 그것이 ‘지금 여기(hic et nunc)’, 21세기 한국에서는 어떤 양상인가. 특히 그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인문학적 지식’은 어떤가. 이제 누구나가 다 아는 대로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개밥에 도토리 신세다. 그 주류 시장인 대학에서 이미 거의 퇴출 직전이다. 대학이라는 그 백화점에서 인문학이라는 이 코너는 손님이 없어 월세도 못 내고 곧 방을 빼야 할 처지인 것이다. 문제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일단은 상황을 양비론으로 분석해보는 것이 유효하다. 판매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걸 탓만 하고 있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일단은 ‘물건’ 자체가 솔깃해서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해야 한다. 현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인문학의 상품들은 뭔가 그 상품성이 떨어져 보인다. 뭔가 새로운 기획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에세이, 시, 소설, 역사, 사유 등등 이런 것은 인간 정신을 위한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 같은 것이라 반드시 섭취를 해줘야 한다. 어쩌면 인기 있는 만화나 드라마나 영화나 가요 등과 적극 제휴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속된 말로 ‘쌈박한’ 포장도 필요하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그것이 안 팔린다면 틈새시장을 노려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시대를 둘러보면 작금에 이르러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민간의 대안 아카데미나 주민문화센터나 도서관 강좌 같은 곳에서 제법 인문학적 아이템들이 인기를 끄는 모양새다. 일정 수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기웃거림에 인문학은 적극 응답할 필요가 있다.

    시대는 언제나 대체로 경박한 방향으로 그 발걸음을 향하지만, 누구나가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고 ‘인간이고자 하는 정신적 노력’에 인생의 일부를 기꺼이 할애한다. 거기에 ‘지적인 욕구’라는 게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절대 절망하지 말자. 나는 기치를 높이 세워 든다. “만국의 지식인이여, 분발하라!”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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