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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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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3부 (17) 아버지의 라디오

[3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국산 라디오 1호’는 산업역군 아버지의 삶이 담겼다

  • 기사입력 : 2022-06-17 07: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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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만인이 사용하는 동등한 호칭이지만 그 뜻은 만 가지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책 제목이 ‘아버지의 라디오’이다.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 김해수 삶의 이력을 딸 김진주가 정리해 출판한 것이다.

    김해수는 금성사에서 국산라디오 1호를 만든 1960년대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을 이룩한 엔지니어이다. 딸은 산업화시대 아버지의 삶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이화여대 약학과 재학 중 민주화시대를 주장하고 활동한 딸 김진주의 남편은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이다.

    금성사 라디오 생산 전경./국가기록원/
    금성사 라디오 생산 전경./국가기록원/

    # 김해수 이야기 1 : 금성사 입사

    1958년, 김해수는 신문광고에 럭키화학공업사에서 ‘고급 기술간부 모집’ 광고를 보고 응시했다. 지원자 2000명, 서류심사를 거쳐 필기시험 자격 83명, 이 중 7명이 뽑혀 실기시험을 보았다. 회로도를 그리는 문제가 나왔다. 이불을 덮어 쓰고 라디오를 분해·조립하고 만든 경험으로 볼 때 대학생에게 구구단 외우고 답하는 것처럼 너무 쉬웠다.

    그리고 최종 합격자는 총 3명이었다. 시험에 합격한 후 첫 출근날, 구인회 사장이 국산라디오 1호 전담 설계를 직접 지시했다. 입사 후 라디오 설계와 관련된 모든 일은 내가 주도해서 진행했는데, 약 1년 후인 1959년 8월에 금성 A-501의 시제품이 완성돼 11월 15일 국산 라디오의 출시가 이루어졌다. 초기 생산량은 87대 정도였고 가격이 2만환이었다.

    내가 금성사에서 받은 첫 월급이 6000환이었으니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그때 시중에서 3만3000환에 거래되던 미제 라디오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편이었다. 당시 국제신보 1959년 11월 4일자에 ‘국산 라디오 등장’이란 기사가 보도됐다. ‘금성 A-501 국산 라디오는 기술 수준이 외국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고 값도 싸다 …. 처음부터 국산 부품을 60%나 사용한 것은 기록될 만한 일이다’ A-501, A는 AC Alternating Current 교류의 약자이다. 5자는 5구식 진공관, 01은 제품 1호 의미이다.

    라디오를 생산한 부산 연지동 금성사 공장 외부 전경.
    라디오를 생산한 부산 연지동 금성사 공장 외부 전경.

    # 김해수 이야기 2 : 박정희 대통령 만남

    라디오 국산화는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한 상태가 계속됐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 5·16 이후 부정축재 기업가 구금 등 정국은 불안정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판매가 되지 않아 공장이 가동을 거의 멈춘 상태인 1961년 여름, 부산 연지동 금성사 라디오공장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방문을 했다. 마침 임원이 외출 중이라 생산과장인 김해수가 현황을 설명했다.

    공장을 둘러본 후 박정희 의장이 “김 과장, 어떻게 하면 한국의 전자산업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소?” 하고 질문을 했다. 이에 김해수 과장은 “광복동 라디오 가게 진열장에 가면 외제 라디오 박람회장입니다. 국산 라디오는 단 1대도 없습니다, 밀수품의 유통을 막아야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일주일 후 밀수품근절에 관한 최고회의 포고령과 전국 농어촌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 정책이 발표됐다. 라디오 판매 부진 영향으로 폐업까지 검토한 금성사는 다시 회생하는 계기가 됐다.

    엔지니어 김해수, 1958년 금성사 공채 입사
    라디오와 관련된 모든 일 주도하며
    1년 후 첫 국산 라디오 ‘금성 A-501’ 개발
    가치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선정

    딸 김진주가 출판한 ‘아버지의 라디오’엔
    근대화산업 이룩한 아버지 김해수 삶과
    산업화 세대 아버지와 반대의 길을 걸은
    ‘민주화 투쟁’ 딸·사위 박노해 이야기 담겨

    # 김해수 이야기 3 : 카멜레온 라디오

    필자도 1970년대 나만의 전용 라디오를 하나 구입했다. ‘메아리’라는 브랜드가 기억에 떠오르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배터리(건전지)를 등에 업고 노란 고무줄로 칭칭 매어진 라디오를 가끔은 창문틀에 보관하기도 했다. 몇 개월이 지난후 배터리 교체를 하려고 하니 라디오 케이스부분과 고무줄 매어진 곳의 색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금성사 A-501 라디오는 외형 플라스틱 케이스를 연한 회색, 미색, 분홍색, 하늘색, 연록색, 신혼부부용, 학생용, 거실용 등 다양하게 구분하여 판매했다. 라디오 판매 소매점은 큰 유리장 넘어 진열장에 라디오가 잘 보이게 전시를 했다. 정오 무렵이면 진열장에 전시된 라디오는 햇빛에 의해 직접 노출이 된다. 천으로 유리창을 가려두는 가게도 있다. 장시간 그대로 두면 햇빛을 받은 라디오 위쪽은 하얀색으로 변하고 아래쪽은 그대로이다. 즉 색이 옅어지거나 바래진 것이다. 하루 종일 햇빛에 노출했더니 뜻하지 않은 이중컬러색이 되었다. 이것을 ‘카멜레온 라디오’라 했는데 기술 부족에서 발생한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회사는 전량 수거해 파기한 사례도 있었다.

    금성사 라디오를 개발한 직원들과 함께한 엔지니어 김해수(왼쪽 네 번째)./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금성사 라디오를 개발한 직원들과 함께한 엔지니어 김해수(왼쪽 네 번째)./대한민국 역사박물관/

    # 금성사 라디오 문화재가 되다

    책 속의 내용이다. ‘딸(김진주)은 아버지(김해수) 원고를 정리하면서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금성 A-501 라디오를 찾아 나섰다. 진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했다. 전국에 3~4대 있지만, 가격도 수천만원 호가할 정도이며, 딸이 그 소중한 유품 하나 간직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팔려는 사람도 없고 제조사인 LG그룹도 모조품을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금성사가 최초로 만든 A-501 라디오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제559-2호’가 됐다.

    # 창원에 있는 민속 박물관

    필자가 사는 창원에 민속박물관이 2군데 있다. ‘창원민속박물관’과 ‘김씨네 박물관’이다. 두 분의 박물관장은 사비를 들여 수집한 1960년대 생산된 전자제품과 생활용품외 일제강점기 교과서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장의 시설유지가 개인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어 조금 아쉽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관심을 가져 우리 시민의 것, 도민의 것,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 전시장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 경남에 대한민국 기업사 박물관 설치

    필자는 공기업 관광본부장 재직시 진주 지수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대한민국 기업사 박물관’을 건립하자고 언론과 세미나에 참석해 여러 차례 주장했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 기업이 만든 제품을 연도별로 세세하게 진열한다. 전시장은 그 시대를 살면서 실제 제품을 사용한 분에게 주는 유·무형의 생산적인 추억과 기억외 우리 후손에게 전해질 지적가치는 우리 사회 전체에 소중한 공공의 자산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이런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많이 건립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건립하면 100이 소요된다고 가정할 때 5년, 10년 후 설립시는 200, 300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예산이 증가할 것이다. 반면 보존 제품은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김해수의 딸도 “세월이 흘러 진품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했다.

    아버지 김해수의 글을 딸 김진주가 엮어 2007년 출간한 ‘아버지의 라디오’ 표지./이래호/
    아버지 김해수의 글을 딸 김진주가 엮어 2007년 출간한 ‘아버지의 라디오’ 표지./이래호/

    # 김해수 이야기 4 :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의 라디오’ 책 속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울린다.

    김해수는 1979년 대통령산업포장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10·26으로 서거했다. 1991년 봄, 딸과 사위 박노해가 민주화투쟁으로 감옥에 가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한 아버지 김해수는 거실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걸어 두었던 대통령산업포장 액자를 거두어 책상 서랍에 살며시 넣었다. ‘아버지의 라디오’를 지은 김해수 딸 김진주 약사님은 거제의 약국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인회의 한마디> 친구를 한 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오래 사귀어라.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을 만들지 말라.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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