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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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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알고리즘아 알고 있니- 심윤경(소설가)

  • 기사입력 : 2022-06-02 20: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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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 안의 작은 기계에 정신을 위탁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 어떤 앱들은 나에게 예의 바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앱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제가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

    나는 이런 문제에 인심이 후하다. 온라인상의 내 개인 활동 이력이라고 해보았자 몇몇 친구들의 SNS 안부와 뉴스 따라잡기, 조촐한 생필품 구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통같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다른 앱에서 검색한 내용을 참조해 예상치 않은 순간에 슬그머니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센스야말로 어찌나 요긴한지. 내 정보력이나 안목을 상큼하게 뛰어넘는 알고리즘의 역량에 몇 번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므로 나는 내 활동 이력을 마음껏 추적하라고 너그럽게 허락하는 편이다. 내 취향과 관심사를 알수록 더욱 더 나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할 알고리즘의 후의에 즐거운 쇼핑으로 답할 우리의 호혜적 관계를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리즘의 센스 넘치는 추천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으리라고 별 의심 없이 생각했는데, 세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활동 이력 추적을 허용할지 묻는 질문에 나처럼 동의하는 사람은 5% 근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거절한다고 한다. 95%의 높은 거절률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난하고 안전하게 다수를 따르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별난 5%에 속해버려서 놀랐고, 남들이 아니오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이전처럼 마음 편하게 알고리즘의 추천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흔들리던 알고리즘과 나의 밀월을 방해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내 친구가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관심사는 온통 골프용품과 골프 연습장에 모이게 됐다. 친구는 나에게도 골프를 함께 배우자고,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소감을 강력하게 피력했는데, 내 나이대에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사실 나에게 이런 권유가 처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아무리 골프가 재미있다고 해도 나는 그 운동에 입문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운동과 친하지 않은 데다 나는 무엇이든 근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풍광 좋은 먼 곳으로 가야 하는 그 운동이 나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친구의 제안을 웃음으로 받아 넘기고 그 일을 잊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친절한 알고리즘은 나에게 골프용품과 골프웨어들을 열정적으로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흔히 보여주던 인테리어용품, 고양이용품, 맛있는 빵집, 식품 광고와는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었다. 친구와 나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을 뿐 골프용품을 검색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알고리즘의 이런 추천은 대단히 수상스러웠다. 알고리즘에게 내가 방문한 페이지나 검색 입력어를 참조하라고 동의한 적은 있었지만 나의 개인적인 메시지를 활용하라고 허락한 적은 없었다. 이 일은 마치, 카페에서 친구와 실컷 수다를 떨고 났더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판매원이 우리가 이야기했던 바로 그 물건을 들고 나타나 판촉에 나선 것 만큼이나 난데없고 침해적이었다.

    게다가 내 휴대폰에는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만을 24시간 기다리고 있는 음성인식 AI가 있지 않은가. 그는 항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힘줘 강조하는 친구다. SNS가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마저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까지 침묵하던 나의 느슨한 경각심이 경보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친절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라고, 무언가 뻔뻔한 일이 일어났다고.

    나의 개인적인 메신저가 털린다 한들, 그 내용은 내가 방문한 활동이력 만큼이나 보잘것없고 무해하다. 기껏해야 유치한 농담이나 섣부른 정치적 견해나 들통나서 비웃음을 당하고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내 손안의 친절한 알고리즘이 나의 개인적인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그 내용을 무언가에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은 섬뜩하다. 더 이상 알고리즘은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심윤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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