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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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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지성인이 필요한 시대-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2-05-11 20: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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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에서 ‘위대한 기업’이 몰락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성공한 기업은 성공으로 인한 자만심 때문에 원칙을 잃고 더 많은 욕심을 낸다. 잘나가고 있다는 이유로 위험과 위기를 부정한다. 몰락이 눈앞에 다가와도 감지할 힘을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눈앞에 닥쳤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할 힘을 잃고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짐 콜리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성공이 몰락의 전주곡임을 알고 있다. 코닥이 그랬고, 모토로라가 그랬고, 노키아도 그랬다. 파도를 응시하지 않고 날씨를 살피지 않는 배는 미래가 없다. 세이렌에게 영혼을 빼앗긴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파멸 뿐이다.

    조선의 개창을 반대하고 낙향했던 사림(士林)은 15세기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을 시도한다. 권력의 중심 훈구 세력을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득권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훈구파의 탄압으로 조광조 같은 인물이 낙마하고 사화를 경험하는 등 좌절을 맛보지만 끈질긴 생명력으로 권력의 중심에 침투한다. 임진년 외세의 침입에 의병을 주도한 것도 사림이었다. 사림이 조선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을 위하는 시대 정신으로 무장하고 기성 권력을 비판적 시선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심을 장악한 사림은 처음의 마음을 잃기 시작한다. 현실적 문제를 등한시하고 주자(朱子)를 신격화해 성리학을 교조화시킨다. 현실과 무관한 의례나 관념적 논쟁에 집착해 백성의 안위는 뒤로 한 채 시대의 문제에 대응할 힘을 잃어간다. 붕당과 당쟁,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한 무시, 특정 가문에 의한 세도 정치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조선을 살린 사람이 조선을 죽인 꼴이 되고 말았다. 선비 정신을 잃고 자정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국 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대는 노인을 보호하지 않는다. 노인은 낡은 모델이고,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쉽게 대체된다. 그가 말하는 노인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님은 물론이다. 기존의 관념에 젖어 새로운 세상을 읽지 못하는 사람, 독단과 아집으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노인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모델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야말로 삶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낡은 모델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문제는 기득권의 폐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붙들고 시대에 저항하면 그 폐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커진다. 고려 말 권문 세족이 그랬고, 조선 말 노론 사대부들이 그랬다.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다가올 변화에 대처할 힘을 잃었다. 일부 학자들이 실학을 일으키고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가올 시대, 아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은 무엇일까? 문학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성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지성인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고 거울 속 자신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을 말한다. 사회 변화에 민감하고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지성인이다.

    지성인은 두 가지를 경계하는 사람이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성이다. 지식은 쉽게 자본과 타협할 수 있다. 비판적 지식도 돈과 만나면 추해진다. 이익에 눈이 멀면 영웅도 괴물로 변한다. 여기에 전문가라는 믿음이 자만을 더한다. 자만은 상황 판단력을 흐려 냉철함을 가린다. 트로이의 목마가 의미하는 것처럼 한 사회나 국가가 몰락하는 지점에는 늘 자만이 있었다.

    지식인과 지성인은 다르다. 지식인이 단순히 지식을 소유하는 자라면 지성인은 그 지식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에 유용한 것을 내놓는 자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시대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지성인이 필요한 시대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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