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성산칼럼] 국선변호인도 사임할 수 있다- 염진아(변호사)

  • 기사입력 : 2021-12-22 20:17:38
  •   

  • 형사 사건의 재판에서, 변호사는 변호인이라고 불린다. 민사 사건에서는 당사자의 대리인인 것과 다르고, 변호사가 재판의 당사자가 아닌,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며칠 전 국선 변호인 사임계를 제출했다. 국선 변호인은 형사 사건의 재판에 있어 가난 등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피고인을 위해 재판부에서 선정해준 변호사가 그 사건의 변호인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변호사 생활 중, 국선 변호인 사임계 제출한 사건이 아주 적은 편이다. 한 두어 번 내가 하고 있는 사건의 의뢰인과 반대 입장에 있는 누군가의 형사 사건이라거나, 그 가족 중 누군가가 국선 변호로 받는 비용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테니 꼭 개인적으로 선임한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에만 사임계를 제출해보았는데, 처음으로 이런 특별한 사정이 아닌 사임계를 제출하다 보니 착잡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사임계를 제출 한 그 사건의 피고인은 변호인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했는데,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건 관계인들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을 찾아 사실 확인서 작성을 하거나 증인으로 불러 달라는 것, 자신이 재판에 자주 출석할 수 없으니 재판의 횟수를 줄여 달라는 것, 피해자가 녹취를 제출했으나 이는 모두 조작된 것이니 그 조작을 밝혀 달라는 것, 피해자가 제출한 영상은 악의적으로 편집되었으니 편집된 사실을 밝혀 달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피해를 입은 것이 더 많으므로 재판장에게 피해자로 인해 피고인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했으며, 필자는 되도록 피고인이 주장하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이러한 일들은 당연히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의 재판을 법률적으로 보조하는 일에 해당하므로 기록을 보며 고민하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재판 당일 필자가 다른 재판에 가 있는 동안 피고인이 필자의 사무실에 전화를 해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크게 소리 지르는 일이 생겼다. 앞서 이미 사무실 직원에게 고성으로 막말 등을 해,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을 경우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사무실 직원도 아닌, 필자의 국선 사건의 시간까지 알 수 없는 다른 변호사에게 자신의 재판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에 필자는 피고인에게 그 변호사에게 사과를 해달라 했는데, 피고인은 그 변호사가 전화를 받으며 자신을 기분 나쁘게 했던 것이고 자신은 목소리가 일부 커졌을 뿐 잘못한 것이 없으며 그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필자에게가 아닌 다른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피고인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사임하게 됐다(물론 그 피고인은 그동안 필자에게 무수히 큰~ 소리로 이야기했으나, 필자는 대체로 그런 부분들까지도 일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재판이 있던 날 있었던 일이다 보니, 필자는 결국 당일 재판에는 출석했고, 사임계를 제출했으나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예단을 가질까, 이러한 사정을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재판장은 국선변호인이 사임계를 재판 당일 제출하자 피고인에게 어떤 변호인을 원하는지에 대해 물었는데, 피고인은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해주지 않고 피고인 자신에게 일을 하라고 한다며, 변호사를 선임하면 변호사가 다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시작하는 것을 들으며 법정을 나섰다.

    변호사로서 다 알아서 해 주고 싶지만, 사건의 당사자는 피고인이다. 사건에 대해 당연히 당사자가 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그런 서로의 역할을 잘해주어야 시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피고인과 변호사의 신뢰가 훼손된다면 그 변호사와 계속 재판을 진행해 피고인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 변호인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보조하는 사람이지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아 주기를 바란다.

    염진아(변호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