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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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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마흔 살 마음사전- 손상민(극작가)

  • 기사입력 : 2021-10-14 19: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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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장님, 신뢰 파괴는 말을 바꾸는데서 나옵니다.”

    최근 한 저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나는 출판사 대표 겸 작가, 책방을 운영하는 1인 기업가라 외부저자의 책을 출간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외부 저자와 계약 아닌 계약을 맺게 된 것은 콘텐츠지원사업의 일환이었고, 저자에게는 연구비가 출판사에는 디자인편집비 정도가 지원되는 상황이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전화통화를 했지만 간극은 더 커졌다. 결국 사업은 파기되었다.

    사업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람 대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게다가 비슷한 일이 한 달 전에도 있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동료 예술가로부터 왜 자신에게만 유독 기분 나쁜 태도를 보이냐며 항의를 들었는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어서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할 노릇이었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려워졌다. 혼자 글 쓰는 일에서 벗어나 사람을 만나고 싶어 벌인 일들인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물론 남편의 말에 따르면, 세상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뿐 직장생활과 비교하면 ‘별 일 아니’라지만 나로서는 사업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역시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 느끼고 만다.

    떠올려보면 나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일에 늘 어려움을 느껴왔다. 첫사랑인 남편을 만날 때도 좋아하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었다.

    책이 좋아 작가가 되고 책을 사랑해서 책을 만들고, 책을 끼고 살려고 책방을 차린 것도 어쩌면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려는 나만의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책은 사람처럼 복잡하지 않고, 언제나 그 속내를 훤히 보여주니 말이다.

    “OO씨는 원래 좋은 사람이고요. 일반적으로 누구나 느끼는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에요.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해요. OO씨 마음이 옳은 거예요. 그 마음은 수용 받아 마땅한 정상적인 감정이에요.”

    TV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뒤이어 내면 아이에게 전하는 ‘어른’의 말, “OO아, 참 힘들었어. 그렇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OO이는 참 좋은 사람이야”까지 들으면 눈물을 펑펑 쏟지 않고는 못 배긴다. 어쩜 이리 매번 울고 마는지, 그녀가 하는 말에 이렇듯 나는 늘 무장해제를 당한다.

    올해 만으로 꽉 찬 마흔이 되었다. 통상 서른아홉 살까지를 청년으로 그 이후를 중년으로 보는 모양이지만, 청년에서 갑자기 중년이 된 현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청년과 중년 사이 뭔가 유예기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다.

    여차저차 어느새 마흔이 된 내 안에는 어린 시절의 나부터 청년기의 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내가 산다.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 한 번도 무언가를 사달라고 졸라본 적 없던 내가 겪는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사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억눌렀던 감정 때문은 아닐까.

    어찌됐건 타인의 상담사례를 보면서 행한 눈물의 정화의식은 내 감정을 보듬는 계기가 되었다. 청년과 중년 사이, 마흔의 초입에서 〈마흔 살 마음사전〉을 쓰기 시작하는 이유다.

    손상민(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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