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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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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지금은 이야기 시대-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1-05-05 20: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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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사과 생산지인 일본의 아오모리현은 1991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봤다. 출하 준비 중이던 사과가 대부분 떨어지거나 상처가 나서 상품 가치가 없어졌다. 이때 한 농부가 태풍을 견딘 사과에 ‘합격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비싸게 팔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강한 태풍에도 살아남았는데 그깟 시험에 떨어지겠냐’는 카피도 만들었다. 사과는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덕분에 합격사과는 아오모리현의 대표 사과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슷한 상품도 이야기가 담긴 것은 인기가 많고 비싸게 팔린다. 왜 그럴까? 이야기가 가진 매력 때문이다. 이야기는 재미있고, 공감이 가며,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TV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유다. 고객은 제품이 아닌 이야기를 구매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본능이 있다. ‘내가 난데’를 보여줌으로써 존재감을 느낀다.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야기는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여기에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탁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실을 말하거나, 통계를 제시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대학과 기업의 자기 소개서에 스토리가 강조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SNS에도 온갖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성공 비결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인간 본성에 있다.

    이야기는 말로 할 수도 있고, 몸짓으로 할 수도 있다. 혹은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사람들은 뭔가를 보는 것만으로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 속에 상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아파트, 오토바이, 가방, 신발, 시계 등 모든 것이 상징이다. 명품이 인기가 있는 것도 그 안에 담긴 상징 때문이다.

    고디바는 영국의 초콜릿 브랜드다. 고디바는 영국 코벤트리 지역을 통치한 영주 부인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영주가 높은 세금을 강제로 거두면서 농노들의 삶이 힘겹게 되자, 이를 안타까워한 고디바가 남편에게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부탁한다. 영주는 아내에게 나체로 말을 타고 영내를 돌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한다. 고디바는 실행했고 덕분에 농노들은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었다. 고디바 초콜릿은 값이 비싼데도 인기가 많다. 고디바라는 이름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이라는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찢어진 청바지, 낡아 보이는 옷, 싸구려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나는 옷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옷보다 내면과 개성, 취향에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옷차림으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 옷에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옷차림, 헤어 스타일, 신발 등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보다 선명하게 알려준다.

    사람들은 고상하게 보이기 위해, 개성 있게 보이기 위해,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상품을 구매한다. 그런 상품에는 ‘나를 가지면 당신은 매력적인 사람이 됩니다’라는 약속이 담겨 있다. 요즘은 부(富)를 자랑하는 것보다 개성을 강조하는 쪽이 유리하다. 부는 속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개성은 돈 대신 자기만의 멋과 스타일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단 사람보다 청바지에 책을 든 사람이 지적이고 매력적이다. 개성은 돈보다 강하다.

    사람들은 이제 사용 가치가 아니라 ‘상징 가치’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한다. 상징이 내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상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한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졌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치 않았고, 여전히 우리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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