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했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잡고
여까지 왔네
☞ 박경리 선생의 인생관을 시로 형상화해 놓은 것 같은 말년의 시 중에서도 시로 쓴 자화상 같은 이 시를 읽으면, 큰 글을 쓸 사람은 하늘이 애초 큰 글쓰기 운명을 세팅해서 이 세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살아생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문학적 업적을 이루시고 수많은 독자들의 추앙을 받으셨으면서도, 정작 당신께선 영광도 사명도 아니었고 ‘아무도 무엇으로도/고삐를 풀어주지 않’는 ‘글기둥 하나 잡고/내 반평생/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다니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수백 명의 인물을 낳고 키워 내신 큰 어머니이기도 한 선생께서 어느 시의 말미에 ‘우주만상 생명 있는 것/모두 한(恨)이로구나’라고 한탄하신 것을 보면, 피조물로서 산다는 것은 저마다 세팅된 연자매를 돌리는 ‘눈먼 말’ 같은 것인가 보다.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