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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짐꾼의 짐은 산 아래에 있다- 김용권(시인)

  • 기사입력 : 2017-07-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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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만능의 옷 한 벌 입고 다닌다. 한 벌로 연출되는 잠옷, 작업복, 외출복이 그 모든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옷 한 벌로 포즈를 잡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운동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설 때 포즈가 엉성하면 믿음이 가지 않겠지만, 옷 한 벌로 일어서는 산의 나무처럼, 굳건한 자세로 마음의 근력을 키우며 산길을 간다. 산은 내 속에 있고 나는 산 속에 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그러나 앞산을 가도 뒷산을 가도 온통 전문 산악인 포즈다. 기능성 등산복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유명상표가 나부낀다. 옷 한 벌뿐인 나는 같이 산에 오르기조차 불편해진다.

    한 발 올려야 한 치 내려서는 산, 산으로 가는 길은 동서남북 어디에나 있다. 땀을 흘리면서 동행과 함께 오르다 보면 어느덧 중턱을 넘어서고 정상이 저만치 보인다. 그때부터 산길은 하나씩 줄어들고 더 올라가면 외길뿐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질러가는 길은 있을 수 없다. 우직하고 말없는 산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정상에 가려면 혼신의 힘을 다해 발을 내어야만 가까워지는 것이다.

    산악영화 히말라야가 생각난다.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는 산사람들의 도전정신과 대자연의 위력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동료의 시신을 발견하였으나 양지바른 곳에 돌무덤을 만들어 안치하고 내려오는 산사람들의 절망도 함께 느꼈다. 산을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힘들고 험한 산일수록 그 산의 지세만큼 깊어지는 생각과 고뇌, 결단할 수밖에 없는 용기도 생기는 것이다.

    저 앞쪽에는 험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다. 바위를 타고 넘어야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 힘들게 오르는 산행 길에 바위를 덜어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산 위를 보다가 오를수록 발아래를 보게 된다. 위를 쳐다보며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폴란드 전문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는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며 도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벽 가셔브룸 서벽을 오르고 난 뒤, 정상이 눈앞에 있는데도 포기하고 하산한 것에 사람들은 물었다. 그는 명료하게 “내가 세운 목표인 서벽을 등정했기 때문이다”라고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의 목표는 서벽을 등정하는 것이었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나무와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정상에 도달한다. 바위를 넘고 계곡을 지나 정상에 오른 것이다. 탁 트인 경관은 땀 흘린 만큼의 감동을 가져오는 것이다. 산에만 정상이 있고 계곡이 있을 것인가? 내 삶도 그러할 것인데 산을 내려와서 보면, 그 산은 바위가 있어 아름답고 계곡이 있어서 더 푸른 물길이 흐른 것이다. 삶에 좌절과 실패가 저 우뚝 솟은 바위나 계곡쯤에 있을 것이다. 산을 이루고 있는 험난한 요소가 없다면 성공에 있어서 무슨 무용담이 생겨날 것이며 실패에 대한 마땅한 변명이 생겨날 리 만무하다.

    나는 만능의 옷 한 벌 입고 짐꾼처럼 산을 오른다. 산 속으로 가는 것은 사려 깊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묵묵한 걸음으로 간다. 꼭 정상이 아니더라도 오늘 올라야 할 목표를 세워 욕심 부리지 않고 발길을 놓아 보는 것이다. 짐꾼은 정상을 노리지 않는다. 짐꾼의 짐은 산 아래에 있다.

    김용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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