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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을 기다리며- 강천(수필가)

  • 기사입력 : 2017-0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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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면 대보름이다. 진작에 입춘이 지났으니, 봄으로 들어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셈이다. 그래도 아직은 이월, 해찰궂은 바람이 차갑기만 하다.

    풍년화와 납매가 꽃망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참이 지났다. 어디 그뿐인가, 봄의 전령이라고 하는 복수초와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린다. 우리가 느끼기도 전에 봄은 이미 시작됐다는 듯, 여러 가지 풀꽃들이 기미를 알려온다. 냇가에 나가보면 갯버들도 딱딱한 겨울 외투를 반쯤이나 열어젖히고 있으리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저절로 찾아올 봄이건만, 조바심 난 마음에 기어이 들길로 나섰다. 하늘은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부을 것처럼 우중충하다. 가으내 알알이 금빛으로 들어찼던 들판에는 길 잃은 찬바람만 부질없이 쏘다니고 있다. 새끼들을 건사하느라 무시로 들락거리던 미루나무 위의 까치집도 텅 비어 있다. 사각사각, 오솔길에 드러누운 빛바랜 들풀이 발길에 짓밟혀 부서지는 소리가 애처롭다. 하늘도, 들판도, 나무도, 풀도 한때는 푸름과 열망으로 가득했던 것들이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차가움에 잠시 논둑 아래로 내려서서 숨을 고른다. 여름 내내 온갖 풀꽃과 곤충들로 소란스러웠을 두렁도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잔해들만 남긴 채 잠들어 있다. 데구루루, 굴러가는 낙엽을 쫓아가던 눈길이 살아있는 이파리 하나를 발견하고서는 흠칫 멈춘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움츠려 있는 달맞이꽃 겨울 잎이다. 모든 것이 소멸해 버린 듯한 이 언덕에서 만나는 푸름 하나가 시린 마음에 살포시 들어와 앉는다. 몸을 낮춰 다시 바라보니 눈에 뜨이지도 않았던 작은 풀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냉이며 꽃다지, 봄맞이가 서로 체온이라도 나누는 듯 옹기종기 모여서 겨우살이하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단순히 ‘진화의 결과에 의한 본능적인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그만일까. 나는 여태껏 이 작은 풀들이 왜 이리도 처절하게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자연의 섭리로만 생각하고, 두해살이풀의 당연한 숙명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새삼 바라보니 이들은 지금 도태와 생존이라는 자연의 시험대 위에서 자신을 다잡으며 시련에 맞서는 중이다.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미약한 지열로 몸을 녹이고, 자세를 낮추어 바람을 피한다. 한 줌이라도 더 햇볕을 받아들이려 바큇살처럼 골고루 잎을 펼쳐놓았다. 동상에라도 걸린 것처럼 불그죽죽하게 보이는 것은 영양과 수분을 얼지 않게 보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생존 방편이다.

    사람살이인들 별스레 다를까. 공장도, 가게도, 월급을 받는 이도, 주는 이도, 다들 엄동의 풀잎 같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온 국민이 같이 겪고 있는 이 공통적인 상실감은 눈앞의 풀들이 견뎌내어야 하는 운명적인 겨울나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위안 삼아 본다. 서릿발 선 나대지 위에 퍼질러 앉은 풀잎처럼, 우리 역시 아등바등 어떻게든 이겨내어야 하는 현실이다. 지혜롭게 겨울을 헤쳐 나가는 자그마한 풀꽃 앞에 한동안 주저앉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대적 상황도 현명한 민중들에 의해 이 겨울처럼 머지않아 밀려나고야 말 것이다. 오는 듯 마는 듯 스며드는 봄기운을 따라 포근한 미소 한 자락도 같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지금 눈앞에 엎드린 달맞이꽃 이파리가 무사히 겨울을 나기만 하면 오히려 세상을 내려다볼 날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강 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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