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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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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스투파의 숲’ 특별전을 보고- 서정매(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 2024-04-11 00: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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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 중 ‘나무와 파충류’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가 이루어졌다. 전시 제목은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인데, 원제목은 ‘Tree and Serpent Early Buddhist Art India’, 즉 ‘인도의 초기 불교 미술, 나무와 파충류’이다. 뱀이 아닌 파충류라고 한 이유는 전시물에는 뱀도 많이 나오지만, 악어도 많이 등장하고 있고, 거북도 등장한다.

    이 전시는 2023년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7월 17일부터 11월 13일까지 약 4개월간 전시했던 것을 한국에서 뒤이어 개최한 공동 전시다. 한국에서는 2023년 12월 22일부터 4월 14일까지 113일간 동안 전시되었는데, 이번 주말에 4개월간의 특별전이 마무리된다. 이번 특별전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전시한 150여 점 중 1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기획전시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까지 남인도 지역의 불교미술품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공개된 바 없는 최초의 전시이다. 둘째로는 부피가 큰 입체적인 작품이 많다. 기원전 2세기의 담벼락에 새겨진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담벼락 일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전시물의 부피와 무게가 엄청나다 보니, 이를 포장하고 옮기고 전시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주기까지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앞으로 또다시 관람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 주제가 ‘스투파의 숲’인 만큼 부처님과 나무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을 상징하는 나무는 무엇일까?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친정으로 돌아가던 길에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부처님을 낳았다. 무우수 나무는 인도에서는 아소카 나무라고 부르지만, 산스크리트어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므로, 이를 의역하여 ‘무우수(無憂樹)’라고 부르고 있다. 그가 출가 전에는 들판에서 약육강식의 광경을 본 후에 큰 나무 아래에서 깊은 사색에 들어갔는데, 그 나무를 깊은 사색에 잠긴 나무라고 하여 ‘염부수(閻浮樹) 나무’라고 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장소는 보리수나무 아래였고, 설법은 나무가 우거진 동산인 ‘녹야원(鹿野苑)’에서 하였다. 부처님이 열반한 장소는 동서남북 사방에 사라수 나무가 각각 한 쌍씩 서 있던 곳이어서, 이 나무를 ‘사라쌍수’라고 부른다. 이처럼 무우수, 염부수, 보리수, 녹야원, 사라쌍수는 부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무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나무는 보리수였다. 특히 기원전 2세기의 작품에서는 보리수가 조각되어 있으면 그 작품 자체가 부처님 또는 붓다의 수행처를 상징했다. 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가 보리수나무이므로, 부처님 없는 빈자리여도 이곳을 향해 경배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한편 보리수나무 아래에는 발바닥 그림, 즉 부처님의 족적(足跡)에 법륜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법륜은 곧 부처님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가 되면 탑 없이 큰 법륜 하나만으로도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법륜이 곧 부처님 실체이자 정신이었던 것이다.

    약 2000년 전의 작품이지만 기원전 2세기와 기원후 2세기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기원전 2세기 작품은 담백하고 고졸한 맛이었다면, 2세기는 화려하고 섬세해지면서 여백이 줄고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탑신을 감고 있는 꽃띠도 점점 화려해졌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일산이었다. 햇빛을 가리는 일산(日傘)은 초기에는 하나만 새겨져 있던 것이 2세기가 되니 너무 과하다고 할 정도로 그 수가 수십 개로 촘촘히 늘어났다. 정성에 정성을 거듭하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러한 모습 또한 앞의 사람보다 더 정성을 다하고, 부처님께 최선을 다하려는 그들의 순수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서정매(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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