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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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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공간] 창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

빈티지와 예술 ‘따로 또 함께’… ‘없는 게 매력’인 자연 지향 공간

  • 기사입력 : 2024-04-10 08: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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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서 나고 자란 주인장 결혼해 창원 정착
    2018년 사파동에 터 잡고 장자사상 공간화

    마음에 닿는 물건만 갖다 놓은 빈티지숍과
    지역 예술가 전시·공연 공간 느슨하게 공존

    “자연 생각하며 새것 대신 쓰던 물건 순환
    내가 좋아하는 것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파”


    간결하다, 감각적이다, 독특하다…. 이 공간을 소개할 만한 각종 미사여구를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적절한 표현을 생각하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어떤 표현이든 이 공간을 얼룩지게 하는 것 같았다.

    “없는 게 매력인 곳이랄까요.” 벌써 6년. 이곳을 꾸리고 지켜온 주인의 말이 꼭 맞다. 그 이름도 ‘무하유(無何有)’다. 장자의 무하유. 없을 무(無), 어느 하(何), 있을 유(有). 직역하자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있는 것’ 쯤이 되려나.

    어쨌든 공간을 소개하기 위해 펜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므로 설명하자면 이곳은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빈티지숍이자 각종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아트스페이스. 소품과 서적은 ‘삼매경’으로, 의류는 ‘리틀버드 빈티지’로, 아트스페이스는 ‘한점’으로 각각의 특색을 살리는 이름을 가지는 동시에 이들 모두는 ‘무하유’로 묶인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주택가에 위치한 ‘무하유(無何有)’는 흰 여백을 비움으로 채워 미학적 공간으로 구성한 곳이다.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주택가에 위치한 ‘무하유(無何有)’는 흰 여백을 비움으로 채워 미학적 공간으로 구성한 곳이다.
    ‘무하유’는 깔끔하게 진열돼 있는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무하유’는 깔끔하게 진열돼 있는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2018년 7월 창원 사파동의 한 주택가에 이곳을 만든 이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온 이노우에 리에(38)씨다. 설치미술을 전공한 그는 한국에서 유학온 친구들이 좋아 추가 공부를 할 곳으로 한국을 택했다. 학업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고도 공부했던 창원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한국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을 갖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자, 장자의 사상 중에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무하유’를 공간화했다.

    장자가 말하길 무하유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다. 무위자연이란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을 가리키나,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일컫기도 한다. “자연에 관심이 많아요. 요즘 시대는 빠르게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또 그걸 쉽게 버리잖아요. 그러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하유’는 깔끔하게 진열돼 있는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판매하고 있다.
    ‘무하유’는 깔끔하게 진열돼 있는 빈티지 의류와 액세서리,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판매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 다양한 서적./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 다양한 서적./김승권 기자/

    공간을 열고 이듬해 무하유 속 한점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루프포레스트’ 기획을 진행하고 미술 전시와 음악 공연, 문학작가 강연, 다큐 상영 등 행사를 열기도 했다. 사실 처음 ‘자연’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곧바로 ‘빈티지’와 결부시키지 못한 참이었다. 그러다 뒷말에 이마를 탁 쳤다.

    “빈티지가 쓰던 물건이잖아요. 매번 새것을 사는 것보다 예쁘고 상태 좋은 중고를 순환하여 사용하는 것. 그것으로도 자연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리에씨는 일본의 경우 플리마켓(벼룩시장)이 비교적 활성화돼 있어 어렸을 때부터 빈티지 제품을 자주 접했는데, 이런 문화를 한국에서도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고.

    “옛날 물건들이 보다 질도 좋고 편해요.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하나를 만들어도 열심히 애정을 담아 만들지 않았나 해요. 기억해보면 지금의 패스트패션 경향이 생겨나기 전에는 옷이 비쌌거든요.”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 빈티지 의류./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 빈티지 의류./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한 서적./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 판매중인한 서적./김승권 기자/

    ‘자연을 아끼자’와 같은 좋은 의미를 다 떠나서 옷과 소품, 접시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두고 보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며 스스로를 낮추지만, 막상 공간에 발을 들이고 나면 ‘무하유’의 의미가 크게 와닿는다. 보통의 가게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취향에 부합하도록 물건을 많이 갖다둘 텐데 그렇지가 않다. 주인장이 욕심이 없는 건가, 어쨌든 공간을 열어둔다는 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지 않나 하며 방문자가 공간의 유지를 염려하게 만드는 곳이다.

    주택가의 집들 사이로 자리한 작은 미닫이문, 그 위로 쓰인 ‘무하유’ 세로 글씨만이 이곳을 가리키는 유일한 이정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 벽면으로 CD와 LP 등이 진열돼 있다. 주인장의 취향이 가득 반영된, 경남지역 인디 뮤지션들의 것들로 채웠다. 짧은 내리막 아래 꼭짓점을 돌면 이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헤드셋 등 장비가 있다. 물론 음반도 판매하는 물건이다.

    “저는 음악도 그렇고 문학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이 음반 주인들인 뮤지션이 이곳에 와 공연을 하면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고 이야기할 거고. 그런 순간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라요.”

    뻥 뚫린 공간을 마주보고 서서 왼편에는 그릇과 책, 소품 등이, 오른편에는 의류가 자리했다. 각각 한 30점은 되려나. 어느 쪽도 가득 메우지 않은 공백이 가게보다는 전시장의 느낌을 준다.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일년에 두어 번 가족들도 볼 겸 향하는 일본에서 주로 이곳 공간을 채울 물건들을 구해오는 편이다. 또는 여행으로 발길이 닿은 유럽 등에서 가져온 물건들도 있다. 의류는 일본에서 가져올 때도 있으나, 한국에서 소통하는 거래처의 물건을 떼오기도 한다. 어디서 오든 중요한 것은 리에씨의 마음에 와닿는 물건이라는 것. 그렇다 보니 다양한 물건은 없지만 분명한 건 갖다 놓은 물건에서 오는 만족감이 상당해진다는 것이다. 빈티지 제품이 원래 그렇겠지만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물건들을 들여다 놓으니 손님 입장에서는 세상 하나뿐인 귀한 물건을 접하기도 하고, 뜻밖의 물건을 찾을 수 있거나, 나도 모르던 취향에 눈을 뜰 수도 있다. 이날 필자는 5부 소매의 티셔츠를 들였고, 동행한 사진기자는 사진집을 득했다.

    이노우에 리에 ‘무하유(無何有)’ 대표가 아끼던 미국 사진가 ‘만 레이’의 책이 판매되자 아쉬운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이노우에 리에 ‘무하유(無何有)’ 대표가 아끼던 미국 사진가 ‘만 레이’의 책이 판매되자 아쉬운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공간을 열 때 그냥 다른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내가 예쁘다 싶은 것들을 들고 왔을 때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 그걸 원했는데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어요.”

    여느 가게처럼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데 ‘내가 소중한 물건을 얻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가게 안의 물건들을 팔아야 하지만 막상 팔리면 너무 서운하다는 주인장 덕분이다. 이날 사진기자는 돈을 내고도 책을 손에 넣는데 수분이 걸렸다. 리에씨가 “이 책 진짜 좋은 책이거든요”라더니 갑자기 그 책을 구매하던 그날 그곳의 분위기를 떠올리려는 듯 사진 한 번만 찍고 드리겠다고 청한 까닭이다.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의 빈티지 의류와 소품, 서적, 그릇 등을 파는 공간./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판매 중인 빈티지 그릇./김승권 기자/
    복합문화공간 ‘무하유’에 전시판매 중인 빈티지 그릇./김승권 기자/

    혹시 이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 들른 무하유에서 뭔가를 구매했을 때 주인 리에씨가 다소 행동이 느려진다면 당신은 아주 좋은 물건을 구매한 것이라고 뿌듯해 해도 좋겠다. 한 시간여 무하유에 머무르면서 의문이 하나 생겨났다. 지척에 있던 이곳을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하는.

    “정말 좋아하는 곳은 공유하기 싫잖아”라는 동행한 사진기자 말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다. 그래서 사실 공유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쓴다.

    무하유는 금·토·일 오후 1~6시에 열지만, 주인장이 작품활동 등 사정으로 자리를 비울 수 있으니 방문 전 인스타그램(@_muhayu_)을 통해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하기를.

    이노우에 리에 ‘무하유(無何有)’ 대표.
    이노우에 리에 ‘무하유(無何有)’ 대표.

    /인터뷰/ 이노우에 리에 대표

    “제가 좋아하는 것만 들이고 파는 공간 더 많이 소통할게요”

    -타국에 정착한 용기가 대단하다.

    △어렸을 때여서인지 생각이 자유로웠다.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이곳에서 살며 좋아하는 일을, 공간을 꾸리고 살고 있다.

    -현재 전공 활동은 따로 하지 않나.

    △아이가 어려 재작년까지 육아에 전념하다 작년부터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고, 5월쯤엔 레지던스에 들어갈 계획이 있다.

    -물건을 많이 두지 않고, 주말만 연다.

    △주말에도 사정이 있으면 못 열 때가 있다. 손님들 입장에서 우리 가게는 너무 불친절한 곳이다. 인터뷰를 하고 보니 제가 장사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간이 소개될 건데, 앞으로 자주 열 생각이 있는지.

    △더 자주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도 고려해보겠다. 여기도 취미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본인 마음에 드는 것들을 가져오면 팔려는 마음보단 팔기 싫은 욕심이 클 것 같은데.

    △욕심이 많은 편이라 내것도 산다. 근데 옷이 많이 필요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괜찮다. 또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개를 사기보다 좋은 것 하나를 사자는 마음이 커서, 지금 입은 옷도 몇년 전에 구입한 질 좋은 빈티지 제품이다.

    주소 창원시 성산구 비음로 61

    영업시간 금·토·일 13:00pm~18:00pm

    사정에 따라 변동(인스타그램서 일정 확인 필수)

    instagram @_muhayu_

    글= 김현미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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