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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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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14) 퇴계일기(退溪日記)

- 퇴계 선생의 일기

  • 기사입력 : 2024-01-30 08: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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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한학연구원장

    기록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글자가 발명되기 전 원시인들이 동굴 벽에 금 하나 그은 것도 기록이라 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글자로 기록되어 남겨진 것을 기록이라 말한다. 기록의 종류와 내용도 다양한데 그 가운데서 매일 기록한 것을 일기(日記)라고 부른다. 요즈음 일기라 하면, 개인이 형식 없이 자유롭게 기록한 글을 말한다.

    일기에 관한 기록이 맨 먼저 나타난 문헌은 전한(前漢) 말기 유향(劉向)의 ‘신서(新序)’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201년에 작성된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이다. 고려 후기 때부터 많은 문인 학자들이 일기를 남겼다. 일기는 꼭 개인의 기록만은 아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경연일기(經筵日記)’는 개인적인 일뿐만 아니라 당시 국왕부터 조정 신하, 재야 학자 등에 관해서 폭넓게 기록했다. 기록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분석, 평가까지 곁들였다. ‘선조실록(宣祖實錄)’을 편찬하려고 하니, 1567년부터 1592년까지의 사초(史草)가 다 불타버려 실록의 자료가 없었다. 이때 선조 초년의 일을 기록한 율곡의 ‘경연일기’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미암일기(眉巖日記)’가 ‘선조실록’의 중요한 내용으로 채택되었다. 개인의 기록이 국사가 된 셈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일기가 더욱 많이 작성되었다. 한학자들은 최근까지도 일기를 썼다. 중재(重齋) 김황(金榥 : 1896~1979)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일기를 남겼다. 필자도 매일 한문 초서로 일기를 쓴다. 많이 쓸 때는 하루에 몇천 자씩 쓴다.

    선현들의 문집에 실린 글은 문체(文體)에 맞게 정신을 가다듬어 쓴 글이고, 일기는 자기 혼자 붓 가는 대로 별 형식 없이 쓴 글이다. 선현들이 돌아가신 뒤 제자나 후손들이 그분들의 저서를 간행할 때 공식적인 글인 문집을 우선으로 간행하고 일기는 대부분 간행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유가 크지만 내용 가운데 남이 보면 말썽이 될 것이나 근엄한 학자의 체면에 손상이 될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는 거의 대부분이 필사본 형태로 남아 있다.

    정부 수립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하여 표점(標點)을 찍어 간행하였다. 최근에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표점을 찍고 번역까지 해서 간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문집에서 볼 수 없는 귀한 자료가 무궁무진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도 일기를 남겼다. ‘퇴계문집’은 잘 알려졌고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지만, 퇴계 선생의 일기가 남아 있는 줄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선생은 평생 일기를 쓴 것 같다. 그러나 남아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겨우 3년치에 불과하다. 방대한 문집 어디에도 없는 귀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1994년 포항공대 권오봉(權五鳳) 교수가 ‘퇴계선생일기회성(退溪先生日記會成)’이란 책으로 정리해서 간행한 적이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퇴계일기’가 발굴되기를 바란다.

    *退 : 물러날 퇴. *溪 : 시내 계.

    *日 : 날 일. *記 : 기록할 기.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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