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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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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철학이여 안녕- 이수정(창원대학교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3-11-12 19: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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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백 년쯤 세월이 지나면 이 글은 어쩌면 21세기라는 이 시대의 한 상징적 장면으로 누군가에게 인용될지도 모르겠다. 소위 철학의 종말이라는 주제는 이미 20세기에도 거론된 적이 있어 우리에게 낯설지는 않다.(이를테면 하이데거의 ‘철학의 종말과 사유의 과제’) 그러나 그때는 이것이 철학 그 자체의 한 주제로 다루어진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의 종말은 아니었다. 그것을 주목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진짜다. 사태가 심각하다. 사람들이 도무지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는다. 정치의 철학 부재는 말할 것도 없다. 인기가 거의 바닥일뿐더러 그 존재감이 거의 없다. 거의 숨이 끊어진 듯한 고요함. 섬찟함이 느껴진다.

    요즘 누구나가 느끼겠지만, 사람들은 어디에서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그런지라 스마트폰 좀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책은 물론,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던 신문과 TV도 독자와 시청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거기엔 철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생각해 보라. 경이로운 편리함을 과시하는 도구이지만, 거기에 철학의 주제들인 존재, 진리, 가치, 정의, 윤리… 그런 것이 있는가. 덕, 인격… 그런 건 말할 것도 없고 상식과 교양 같은 것도 이미 빈사 상태다. 요즘 젊은이들은 심지어 소플아도 데칸쇼도 공맹노장도 거의 모른다. 그 결과가 어떠한가. 세상엔 상식도 교양도 철학도 없는 괴물들이 득시글거린다. 시비 정사도 없이 끝없는 욕망과 날 선 감정만이 사람을 움직여 그것이 살벌한 투쟁을 부추기고 심지어 끔찍한 전쟁까지도 일으킨다. 사람들은 지난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를 못했다. 양차 세계대전이 바로 엊그제였고 6·25 남북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휴전 중이건만 또 여기저기서 전쟁이다. 이러고도 인간이 과연 ‘생각하는 존재’라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한 데카르트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한 파스칼도, 다 유구무언일 것이다.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적이라고 진짜 절망해 버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인간은 절망의 단애 끝자락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해묵은 ‘아침이슬’을 우리는 다시 소환해 본다. 참으로 묘하고 묘한 것이 세상의 이치다. 죽음은 분명히 종말이지만 그게 완전한 끝, 즉 소멸은 아니다. 가을의 낙엽도 다시 봄날의 새싹으로 이어진다. 끈질긴 생명력이 존재를 이어간다. 그런가? 철학도? 그렇다!

    전국의 철학과가 다 폐과되더라도 철학 그 자체는 아마 살아남을 것이다. 인간의 뇌가 욕망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다 망가지더라도 어쩌면 소위 AI가 그것을 대신해 줄지도 모른다. 거기에 철학의 찬란한 유산들이 데이터로서 입력되기만 한다면.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건 인간의 감성에다 철학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래와 이야기(소설,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이다. 예컨대 비틀스나 밥 딜런이나 BTS 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들의 노래에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런 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진다. 물론 거대서사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칸트도 헤겔도 다시 만나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들의 언어보다 더 막강한 철학적 언어가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소위 인류 4성인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다. 그 언어들은 대개 단편으로 전해진다. 설혹 철학과가 폭삭 망해도 그들의 철학은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기대해 보기로 하자. 키케로의 말처럼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 “철학이여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자. ‘안녕’이라는 우리말은 작별 인사이기도 하지만, 만남의 인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형태의 철학을 맞이하기로 하자. 이런 글도 그중 하나다.

    이수정(창원대학교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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