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춘추칼럼]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운다- 장석주(시인)

  • 기사입력 : 2023-11-02 19:44:41
  •   

  • 숲길 바닥 여기저기에는 여문 도토리알들이 나뒹군다. 활엽수의 잎들은 단풍이 들고, 숲길에는 낙엽이 쌓인다. 단풍은 꽃인 듯 화사하다. 동네 도서관 뒤편 단풍으로 물든 숲길을 걷는 게 오후 일과 중 하나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구르몽, 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가?’라는 중학교 시절 배운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숲길의 청량한 공기와 빛을 사랑한다. 나는 숲길에서 인생이 노래와 같이 흘러간다고 느낀다. 숲에는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간혹 야박한 사람들이 다람쥐나 청설모의 양식인 도토리를 싹 쓸어간다. 그건 숲의 생명체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이고 약탈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스탠드 등을 밝히고 어제 읽던 독일 시인 아이헨돌프의 시집을 읽는다. 내가 시집을 읽을 때 고양이들은 애기가 칭얼대듯 공연히 운다. 나는 시집을 내려놓고 심심하다고 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사냥놀이를 한다. 막대에 매단 깃털을 휘두르면 마치 사냥감이라도 되는 듯 고양이는 그걸 쫓아 달린다. 깃털이 공중에서 펄럭이면 고양이는 그걸 포획하려고 솟구친다. 고양이가 도약할 때마다 나는 감탄을 한다. 고양이가 숨을 헐떡일 때쯤 사냥놀이를 그만둔다. 간식 몇 알을 얻어먹은 고양이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두 앞발을 가슴으로 접어 넣은 뒤 조용히 쉰다.

    지난여름 장마 때 물막이용으로 쌓은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 넘어 흘러나왔다. 모래가 가득 하던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쯤 빠져나간 탓에 훌쭉해졌다. 그새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의 무릎 관절은 조금 더 닳는다. 해질녘 소란스럽던 새떼가 사라지면 빈들에는 어둠이 내린다. 종일 모이를 찾아 돌아다니던 닭들은 닭장 횃대에 올라앉아 잘 준비를 마쳤다. 어느덧 이웃 교회 첨탑의 십자가 네온 조명에 불이 켜지고, 적막하고 검푸르고 하늘에는 청과일 같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이맘때쯤 주방의 냄비에서 배추된장국이 끓고, 밥솥엔 밥물이 넘치며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귀가한 식구들은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우리는 어머니가 지은 밥과 배추된장국, 시금치무침과 고등어구이, 두부탕수를 먹을 것이다. 식구들이 웃으며 식사를 하는 동안 훌륭한 요리사는 우리들 뒤에서 만족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을 테다. 저녁 식사를 차리던 어머니는 지금 여기에 없다. 세월이 흘러 식구들도 뿔뿔이 흩어져 나 혼자만 남았다.

    당신은 가을을 좋아하는가? 가을 저녁의 달콤한 고독에 갇힌 채로 인생을 돌아보아라. 당신이 이 생에서 누린 모든 행운에 감사하라. 나는 가끔 살고 죽는 일에 대하여 곰곰 생각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멸의 진리다. 돌이켜보면 생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건강한 심장과 폐와 위를 주고, 온전한 팔과 다리를 주었다. 나는 노동으로 밥을 벌고 그 덕분에 나는 헐벗거나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내게 지상에 와서 제 생을 마치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가슴을 주고, 아름다움과 추를 가려서 보는 눈과 심미적 이성을 준 이 생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지금 누군가는 금생에서의 숨결을 꺼트리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다. 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 한 사람쯤은 당신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삶이 권력이라면 죽음은 그 권력의 유실이다. 죽음은 생의 불가피한 완결이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흐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가? 당신이 따스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때 누군가는 하룻밤 잠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돎을 기억했는가? 당신은 딸과 아들을 늠름하게 잘 키웠는가? 당신의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는가? 당신이 잘 살았다면 이는 당신 뒤에 남을 가족에게 큰 영예가 될 테다. 지금은 조락과 죽음의 계절, 이 순간 살아있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살아서 아침마다 사과 한 알을 먹고, 사랑하는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숲길을 산책하며, 골골송을 부르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고, 가을 저녁의 결이 고운 고요 속에 머문다면 이보다 더한 행운은 없다.

    장석주(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