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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오답노트-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23-08-22 20: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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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창 시절 오답노트를 한 번씩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학생, 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고시생이 말하는 우수한 성적 비결에 늘 오답노트가 있다. 오답노트는 내가 틀린 문제를 별도로 정리하여 반복적으로 보고 또 보는 방법인데,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고난도 학습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좋은 방법을 우리는 학창시절에만 써먹는다. 만약 오늘 내가 했던 많은 일 중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일을 기록하고 보고 또 본다면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과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오답이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오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노력에는 인색하다. 최근 새만금 세계 잼버리 축제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다. 얼마나 기록되고 공유될 것인가. 물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노력도 기록되어야 하지만 미리 준비를 하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도 빠짐없이 꼼꼼히 기록되어 공유되어야 한다.

    세계박람회 등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하거나 개최해야 할 우리에게 이 오답노트는 더없이 소중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특히 벼락치기를 해야 할 때, 이 오답노트 한 권만으로도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재난을 겪고 난 이후에 만드는 오답노트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차원에서 그 힘이 더 강하다. 지난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세월호 침몰, 최근의 이태원 압사 사고 등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오답노트는 지금 얼마나 축적되어 있을까.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기록이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지만 모두 분절적이고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다. 국내외에서 발생했던 재난을 한눈에 찾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오답노트로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선진국의 재난 기록 노력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 1995년 효고현에서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일본은 지진의 기록을 공간에 남겼다.

    고베에 가면 당시의 지진으로 부서진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진의 진앙지였던 아와지에는 지진의 원인이 된 노지마단층을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다. 이렇게 기록된 공간은 일본 자국민을 넘어 전 세계의 공무원 및 연구자가 찾는 견학지가 되었다.

    미국 9·11테러로 파괴된 쌍둥이 빌딩 자리에는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방법 대신 기념관과 박물관을 건립하여 당시를 기록하고 추모하고 있다. 이제 이곳은 연간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오답노트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꽤 크다. 먼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춰 놓을 수 있다.

    일본과 미국 사례를 본다면 오답노트는 전 세계의 정책수립자 및 연구자의 중요한 학습 기회도 되어 준다.

    이제부터라도 국가 차원의 오답노트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재난을 통합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 필요하다. 재난의 흔적을 공간에 남겨두고 전시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당시 재난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교육까지 동반된다면 국민의 안전의식 개선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틀리면 실수지만, 반복적으로 틀리면 실력이 된다. 우리 사회의 실력 향상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수를 기록하고, 기록된 실수는 공유되고, 공유된 실수는 개선되어야 한다. 책임을 물어야 되고, 실수가 부끄러워 공유가 인색하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은 더딜 것이다.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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