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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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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④전북 김제·만경평야와 금산사

  • 기사입력 : 2005-07-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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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경·수난의 역사 문학으로 태어나…


      최근 1박 2일 일정으로 학생회 임원 100여명을 인솔하여 김제에 있는 모악산 유스호스텔 수련원으로 갔다. 전북지방으로 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는 아이들은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들떠 있었다.

      호남고속도로 신태인 나들목을 거쳐 김제 땅으로 들어서니 망망대해 같은 김제·만경 평야가 가없이 펼쳐진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서 유일하게 땅과 하늘이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지명이 벽골(碧骨)인 것은 바로 볏골(벼의 고을)로 일찍이 삼한시대부터 쌀 농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벽골제

      국도 29번이 지나는 원평교 부근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 부지 면적 3만여평에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과 삼한시대 저수지 벽골제의 유적이 남아있다.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둑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축조 연도가 330년(백제 비류왕 27)으로 기록되어 있다. 벽골제는 길이 3.4km. 높이 4.4m. 상단폭 7.5m. 하단폭 17.5m이고. 관개면적이 김제·만경평야를 비롯 정읍. 부안 일부 등 1만ha에 달했던 제방으로 수문도 5개나 있었는데. 수문의 이름이 각각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이었다.

      벽골제의 주요 수원은 원평천과 두월천이고. 이 두 천이 합류되는 지점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둑의 한가운데를 파서 수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둑은 두개로 잘려지고 수문도 3개가 사라지고. 현재는 제방 380m와 수로인 장생거와 경장거만 남아있다.

      ▲수리민속유물전시관
      벽골제에 있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은 4개의 실로 나누어져 있다. 제1전시실은 농경의 기원인 벼농사의 전래 및 선사시대의 농기구로부터. 벼의 파종. 성장. 수확. 제분. 저장. 축산 등에 필요한 각종 농기구 및 농점(農占). 농서. 농가월령가 등의 전시를 통해 한반도 농경문화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제2전시실은 수리의 역사실로서 수리농기구의 종류 및 수리시설의 발달을 입체적 모형을 통해 전시하며.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수리시설의 변천과정을 통해 인류가 가장 오랜 세월동안 이용한 수전농경문화의 역사를 보여준다.

      제3전시실은 약 1700년 전 축조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벽골제의 연혁과 규모. 축조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제4전시실은 벽골제를 탄생시킨 농경문화의 산실로서 한반도 최대의 곡창인 김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공간이다.

      유일하게 지평선 볼 수 있는 '김제·만경평야'

      가장 오래된 저수지 '벽골제' 흔적만 남아

      '수리민속유물전시관' 농경 변천과정 한눈에

      김제 무대 소설 '아리랑' 모든 것 문학관에 전시

      법상종 근본도량 '금산사' 문화유산의 보고

      ▲아리랑문학관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 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 싶었다’로 시작되는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발원지는 김제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넓은 들이란 지평선이 보이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 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이다. 이 기념비적인 소설의 위업을 담은 아리랑문학관은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벽골제 건너편에 비켜서 있다.

      소설 아리랑은 김제를 주무대로 일제치하에 겪었던 나라 잃은 설움과 치욕. 민족의 고난과 애환 그리고 일제에 의연히 맞서 독립을 이루어낸 것을 그린 작품이다. 1층 로비에서 직선으로 몇 걸음 내디디면 제1전시실을 만난다.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육필원고지가 우리를 압도했다. 2만장의 원고지는 작가의 혼을 담아 놓은 것이다.

      1전시실은 아리랑이 탄생하게 된 구한말의 국내외 정세가 소상하게 설명되어 있고. 일제강점기 식량수탈의 표적이 됐던 이유를 이해하게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작가가 아리랑을 쓰기 위해 여행했던 기록과 스케치가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은 소설 아리랑을 위한 공간이다. 매일 집필계획을 세우고 기록한 진척상황을 달력과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앉았던 의자와 탁자. 만년필 등 집필실이 재연됐고. 즐겨 입었던 무명한복이 전시돼 있다. 작품을 위해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보냈는가는 문학관 전시실에 수북이 쌓여있는 볼펜심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다.

      3전시실은 그의 사적인 내력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문학관을 답사하기 전에 소설 아리랑을 읽어보고 떠나는 것이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다. 벽골제와 아리랑 문학관을 답사할 때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기꺼이 해설을 마다하지 않는 문화유산해설사 임경숙(☎011-9647-1981)씨가 벽골제를 지키고 있다. 문학관을 떠나 금산사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소설 아리랑 제10권의 ‘우리 민족은 일본을 결코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 라고 한 작가의 말을 다시 생각하면서 나는 10년이 지난 오늘도 동의한다.

      ▲금산사
      오래 전에 금산 약방이 있던 자리에는 현대식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주차장을 지나면 하천을 따라 일주문까지 꽃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길이 이어진다. 호젓한 산사를 찾아가는 것은 고요함과 한적함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근래에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절집 앞마당까지 타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때로는 매표소에서 직원들이 통제를 하지만. 차를 몰고 들어가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그래서 평소 사람들로 붐비는 큰 절집은 새벽에 찾아보는 것이 안성맞춤이다. 수련활동에 참가한 학생들의 새벽잠을 깨워 가벼운 걸음으로 경내로 들어서니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노란색. 자주색 꽃들이 새소리와 함께 반겨준다.

      일주문을 들어서다. 두 차례에 걸쳐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지구촌 공생회를 이끄는 송월주 금산사 회주 스님을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미륵신앙이다. 미륵신앙은 이상세계를 제시하는 미래불인 미륵을 믿는 신앙이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지어졌다. 창건 당시에는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때 진표율사는 미륵장육상을 조성하여 미륵전에 봉안하였고. 그 이래로 금산사는 미륵신앙. 즉 신라 오교의 하나인 법상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이 지역 불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따라서 금산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미륵전에 있는 미륵불이 주불이다.

      당간지주와 금강문을 지나 보제루 아래를 통해 계단을 오르면. 눈이 확 트이면서 널찍한 절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마당 한켠을 지긋이 누르고 서향을 향하고 있는 건물이 국보 제62호 미륵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3층 법당으로. 겉보기에는 3층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모두 트인 통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금산사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 해도 석등. 노주. 석련대. 육각다층석탑. 오층석탑이 경내를 꽉 채우고 있다. 금산사에서 아름다운 문화유산에 담겨진 진리를 마음속에 새기고 나면 여름날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Tip- 맛집
      △벽골제가든(☎063-547-3933)
      벽골제 정문 앞에 있다. 온통 꽃으로 화단을 한 것처럼 꾸며진 곳에서 4천원짜리 김치찌개. 고등어찌개. 명태찌개를 맛볼 수 있다. 주인 황희관(63)씨가 손수 키워서 즉석에서 잡아주는 토종 닭 도리탕이 일품이다.

      △금산사 백제회관(☎063-548-4019)
      금산사 주차장 부근에 있다. 음식 종류만 해도 산채비빔밥을 비롯하여 15가지를 만들어낸다. 주인이 직접 담가서 파는 동동주는 파전과 함께 한잔하면 결코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마산제일고등학교 학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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