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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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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생각하지 않기 위해 떠난 여행- 서현주(전직 교사·작가)

  • 기사입력 : 2024-04-11 18: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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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이 많다. 걱정이 많은 것과는 다르다. 여러 개의 선택지 앞에서 눈이 빙빙 도는 편이다. “애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반가워. 고민 안 해도 되잖아.” 육아 선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 적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육아가 힘들었던 점 두 가지는 잠을 자지 못하는 것과 깨어 있는 시간에 선택할 것이 많다는 거였다. 분유라는 주제가 있다면 브랜드, 적절한 가격대, 소비자의 만족도, 구매처, 구매 주기 등을 알아봐야 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샀는데 아기가 거부한다면? 순서도의 시작으로 돌아간다. 작은 인간 한 명을 살려내려면 셀 수 없는 키워드가 존재하니 생각 많은 자에게는 말 못하는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어려웠다.

    어느덧 둘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육아에 있어서 몸이 편해졌다. 선택과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학교 적응, 학습, 교우 관계, 독서, 교외 활동, 운동량, 마음 상태 등을 수시로 체크하다 보니 피로하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변화도 한몫한다. 교사로 일하다가 프리랜서가 된 지 3년 차이니 모든 것을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됨이 장점이지만 한계 없는 생각의 확장은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쌓여 있는 작업들을 처리하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잠시 떠나야겠어.

    생각에 지친 여행 계획자는 베트남 푸꾸옥 풀빌라 패키지를 선택했다. NO 옵션, NO 쇼핑, NO 비자. 리조트에서 쉬다만 오면 된다. 조식도 준다고 하니 점심과 저녁 메뉴만 고민하면 돼. 20대 때 유럽 자유여행을 다녀오고 일주일을 앓아누웠던 나에게 꼭 맞는 무(無) 생각 여행이다.

    우리가 찾은 푸꾸옥 남부의 리조트에는 한국인 반 외국인이 반이었는데, 외국인의 국적은 추측컨대 유럽쪽이었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어서일까, 건물도 유럽식이다. 리조트 직원들은 나를 ‘마담’이라고 부른다.

    현지인이 하는 스파를 찾았다. 성인 2, 아동 2 발 마사지가 우리 돈 4만5000원. 시원하지만 마음이 찜찜하다. 애들까지 이런 호사를 누리는게 맞나? 그들의 친절함에 감사한데 귀족놀이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불편했다. 택시를 타도 몇천 원이면 섬 전체를 너끈히 다닐 수 있는 것에 1인당 GDP를 떠올린다.

    푸꾸옥의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케이블카를 타면 유원지로 조성된 다른 섬으로 넘어간다. 광활한 바다를 감상하는데 어촌이 있다.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들 사이에 빨랫줄을 이어 빨래를 널어놓았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서 보기에는 풍경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겠지. 작은 이동 수단에서 정면에 워터파크, 발 밑 어촌 마을, 등 뒤로 형형색색의 관광단지를 모두 볼 수 있다. 자본주의와 개발, 빈부격차 등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이곳 사람들은 관광지 개발을 환영할까? 자연이 훼손되면 어쩌지. 레스토랑이 정말 싸네. 인건비가 저렴해서겠지? 정신적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다 또 다른 자아가 외친다. ‘그냥 즐겨. 네가 뭔데.’ 휴양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가 비행기에서는 멀미가 심하게 났다. ‘좋은 비행기를 타고 싶다. 그럼 탄소 발자국은?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이 많지?’ 그것을 않으려는 목적, 아마도 실패.

    서현주(전직 교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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