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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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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예술인을 담다] (17) ‘경남 연극의 역사’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

“50여년 연극인생, 자부심 하나로 버텼죠”

  • 기사입력 : 2024-04-08 0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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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작은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갈림길에 섰던 햄릿의 독백. 극단 마산의 이상용 대표가 무대로 향하는 갈림길마다 운명처럼 떠올랐던 대목이다. 지난 2일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뒤, 50여년을 이어온 연극의 삶을 되새기면서도 이 대표는 그것을 읊조렸다.

    제34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 시민극장 공연장에서 젊은 날을 떠올리며 무대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제34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 시민극장 공연장에서 젊은 날을 떠올리며 무대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경남대 영문과 재학 중 연극부 창설
    1985년 극단 마산 맡아 40년 이끌어
    배우·연출가 이어 극작가로 데뷔
    1년에 3~4편 공연·각종 대회 수상

    ◇운명처럼 시작한 연극= ‘햄릿’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의 영문과가 희곡을 배우는 것이 당연했듯이 경남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던 이 대표도 강의를 통해 ‘햄릿’을 배웠다. 다른 무엇보다 희곡 공부가 즐거웠다. 그는 경남대에 연극부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는 당사자였다.

    “1학년 때 교수들이 막걸리를 사주면서 영문과는 연극을 해야 한다고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연극부를 만들었는데 4년 내내 연극만 하게 됐죠.”

    1학년에 연극부를 만들어 2학년 때 처음 무대에 섰다. 유치진 작품의 희곡 ‘부부’를 선보이게 됐고 이 대표는 ‘남편’ 역할을 맡았다. 첫 공연인 만큼 머리가 새하얘져 기억나는 것은 없었지만, 연극을 마친 뒤 관객들이 박수를 치던 장면은 눈에 선하다. 처음 느끼는 감격이었다.

    그렇게 학교 연극부를 이끌어가다 졸업 전에는 극단 ‘마산 카페 떼아뜨르’를 창단해서 ‘공모살인’으로 창립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가 군대를 가면서 활동이 줄어들고 그가 군대에 다녀올 때 즈음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 그의 후배가 자신들이 창단한 극단인 ‘극단 마산’으로 들어올 것을 부탁하면서 1985년 극단 마산의 대표가 됐다.

    대학시절 배우와 연출을 오갔던 이 대표는 극단 마산에서 극작가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극단 마산에 들어온 해에 첫 희곡 ‘징소리’를 썼다. 거창 극단 입체가 이 희곡으로 공연을 펼쳐 경남연극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바로 1986년에는 희곡 ‘삼각파도’를 만들어 극단 마산이 이 작품으로 전국연극제에 나섰다. ‘삼각파도’는 전국연극제 희곡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극단 마산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신마산 세림상가에 극단마산 전용소극장을 마련하고 1년에 3편 혹은 4편의 작품을 펼치며 IMF 외환위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활동했어요. 올해 극단마산이 40주년을 맞이했는데, 제 연극 인생에서 극단 마산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제34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 시민극장 공연장에서 젊은 날을 떠올리며 무대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제34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한 이상용 극단 마산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 시민극장 공연장에서 젊은 날을 떠올리며 무대에 서 있다./김승권 기자/

    여러 기획 통해 ‘연극 부흥’ 꿈꿔
    국제연극제 등 경남연극사 한 획
    최근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
    “지역 지키는 연극 후배들 감사”

    ◇경남 연극 역사를 이끌다= 극단 마산의 대표가 갓 되었던 청년 이상용에게 꿈이 하나 있었다. 경남 연극의 부흥이다. 수도권처럼 경남에서도 연극 문화가 집중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는 연극 행정가처럼 여러 기획을 시작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경남 연극 운동’이었다.

    “극단의 대표가 되고 나니 극단의 공연만 해선 안되겠다 생각했죠. 마산 연극을 넘어 경남 연극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겨났어요.”

    1980년대 당시 경남의 소극장이 많지 않았는데, 이 대표는 이들을 모두 극단 마산의 소극장에 초대해 무대에 올리는 ‘경남소극장 축제’를 기획했다. 이 축제는 ‘전국소극장 축제’로도 이어져 12년간 전국의 소극장들이 마산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1989년에는 연극의 국제 교류를 꿈꾸며 해외 극단을 초대하는 마산국제연극제를 만들었다. 마산국제연극제는 2014년까지 26년이나 지속됐다.

    2007년에는 아이타(AITA/IATA) 세계연극총회 및 세계연극축제를 마산에 유치했다. 아이타 총회가 아시아 지역에서 열린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람사르총회가 경남에서 열렸던 2008년에는 세계환경연극제를 마산에 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극단 마산 차원에서도 국제적 교류가 활발했는데, 이는 이 대표가 영문과를 졸업해 언어적 교류가 가능했기에 이뤄질 수 있었다.

    “영문과를 나와서 생뚱맞게 연극 외길을 걷게 됐는데, 영문과를 나온 게 내 연극 활동에 큰 도움을 미쳤다니 그 시작이 운명처럼 느껴질 수밖에요.”

    ◇연극을 이어오는 이들을 향한 찬사= 이 대표는 이렇듯 50년이 넘는 시간 연극인으로서의 성취는 물론 경남 연극의 역사까지도 견인해왔다. 연극인 개인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 이상을 일궜기에 이해랑연극상에서 공로상의 성격을 가진 특별상을 경남 연극인 최초로 받을 수 있었다. 현재 극단 마산의 대표이자 30편 이상의 희곡을 써낸 원로 극작가로 자리 잡은 그는 경남에서 연극을 이어오고 있는 후배들을 응원했다.

    “정말 오랜 시간 연극을 해왔지만 연극은 가장 배고픈 예술이에요. 영어 선생이나 할걸 후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그런데 이 자부심이 우리를 살리는 거예요. 명분 있는 예술을 해오고 있다는 자부심. 힘든 시기에 이 자부심으로 지역을 지키는 연극 후배들에게 늘 감사하고, 또 이들이 인정받는 시기가 오길 바랍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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