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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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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러 드러누웠다, 봄날의 가로수길에

제1회 ‘가로 눕기 대회’ 참가해보니

  • 기사입력 : 2024-03-17 21: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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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 가로수길 공원에 매트 들고 39명 집결
    대화·잠자기·먹기 금지… 누워만 있어야
    생각 멈추니 풍경이 보이고 자연이 느껴져
    참가자들 “지역서 즐기는 이색축제 즐거워”


    언젠가 ‘한강 멍 때리기 대회’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저거 잘 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기자는 1분이 1시간 같았던 학창 시절 언제나 초점 없는 눈으로 교탁을 바라보며 망상을 해왔다. ‘내가 지금 초능력이 있어서 몰래 집으로 순간이동하면 어떨까’ 같은 참으로 쓰잘머리 없는 것들이다. 그러자면 1시간 같던 1분이 체감상 30분까지 줄어드는 것 같았다.

    17일 오전, 기자가 경남도민의 집 가로수길 소공원에서 난데없이 잔디 위에 누워있게 된 연유도 ‘멍 때리기라면 자신 있다’는 망상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창원에서 드러눕기만 하면 되는 ‘가눕대: 가로 눕기 대회’를 한다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규칙은 간단하다. 신문지고 매트고 돗자리고 뭐든 가져와서 공원에서 드러눕는다. 대신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는 물론 책 읽기, 먹기 등 몰두할 수 있는 것들은 금지된다. 대화도 할 수 없고 잠들어도 안 된다. 말 그대로 ‘누워있기만’ 하는 것이다.

    17일 창원 가로수길 소공원에서 열린 ‘제1회 가로 눕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각자 준비해 온 소품들을 이용해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성승건 기자/
    17일 창원 가로수길 소공원에서 열린 ‘제1회 가로 눕기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각자 준비해 온 소품들을 이용해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다./성승건 기자/

    이날 공원에는 기자를 포함한 39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각자 돗자리와 매트를 펴고 따가운 자외선을 막아줄 우산, 선글라스, 준비해온 인형 등을 배치했다. 대회는 사전 설명 이후 10시 정각을 살짝 넘긴 10시 2분에 시작됐다. ‘자연을 돌려준다’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주최 측은 스피커를 통해 연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틀어 놨다. 참가자들은 도로변과 수평한 ‘가로’로 누웠다. 동물 잠옷을 입은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 사이를 다니며 실격 사항은 없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은 적당했다. 막상 시작하니 심심하다. 휴대폰이라는 주인을 잃은 엄지가 주머니 속에서 휘적거린다. 과거 잘했던 망상을 해보자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망상은 결국 과거의 흑역사만 소환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현재의 풍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걸어가며 ‘세로’로 바라봤던 가로수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길을 빽빽하게 채운 커다란 메타세쿼이아들이 한눈에 보이고 그 아래로 너무 작은 사람들이 지나친다. 대회에 새 소리를 틀어놔서일까, 왼편 소나무에 몸통이 온통 검은 새들이 내려앉았다가 날아오른다. 날개가 큰 맹금류도 지나간다. 평소에는 보지 않았던 구름의 움직임,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나뭇가지들이 즐겁다.

    기자는 1시간을 누워있다 기권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기사를 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11시 기준 기자를 포함한 3명이 탈락하게 됐다. 기자 바로 옆에서 잠들었던 참가자도 탈락을 통보받았다. 나는 그가 걸리지 않길 빌었으나 애석하게도 심사위원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두 번째 탈락자인 송종민(29) 씨는 “SNS를 통해 행사 내용을 알게 됐는데 이전에 해보지 못한 이색적인 대회라서 참가했다”며 “누워있으면서 자연과 친해지는 기분이라 좋았다. 어제 일을 늦게까지 해서 그런지 깜빡 잠이 들어 탈락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가눕대’ 참가자들이 준비해 온 인형을 안고 공원 잔디밭에 누워 있다./성승건 기자/
    ‘가눕대’ 참가자들이 준비해 온 인형을 안고 공원 잔디밭에 누워 있다./성승건 기자/

    이날 가로수길에서 펼쳐진 이색적인 눕기 대회는 시민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지나가다 사진을 찍는가 하면 대회 참여와는 별도로 눕기 체험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10여분간 눕기 체험을 한 김조은(25) 씨는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왔다가 지역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너무 재밌어 보여서 체험을 신청했다”며 “날도 너무 좋았고 봄 냄새를 처음 맡는 기회를 가진 것 같아 다음에도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이번 대회는 청년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창원기획단 뻔한창원, 함안청년창업가 오브아르, 경남대 동아리연합회 회장 등이 함께 기획한 행사다. 찰리윤 뻔한창원 대표는 “경남에 특화된 재미있는 행사를 공부해왔고 올해부터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며 “올해는 가로수길로 시작할 건데, 창원 가로수길은 다른 가로수길보다 ‘가로수길’다운, 자랑할 수 있는 경남의 공간이다. 어떻게 하면 이 가로수길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있을까 생각하다 ‘가눕대’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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