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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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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 (11) 박준우 화가

주변의 모든 것이 ‘예술’… 따로 또 같이 꿈 그리는 공간

  • 기사입력 : 2024-02-14 20: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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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안공간 ‘로그캠프’서 작업실로

    2017년 대학 동기들과 꾸린 공간
    젊은 예술가들 활동 장소 입소문
    개인전·작가들 전시 20여회 열어


    바라본다. 그곳에서 흐르는 바람의 냄새, 맞닿은 지면의 촉감, 머문 시간까지도 사유하는 그것에게 다른 의미는 없다. 박준우(32) 작가는 관찰자와 같다. 그의 관찰은 거창하진 않다. 자신의 ‘주변’에서 대수롭지 않게 흘러가는 면면이다.

    그렇기에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터다. 박 작가는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레지던시로 다양한 지역을 방랑하며 ‘주변’을 담아냈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 화가로서 성장을 함께 한, 자신을 포함한 지역 청년 작가들을 꿈꾸게 만들었던 창원의 작업실이다.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청년 작가의 꿈 키우는 요람

    -작업실을 다른 작가들과도 공유하고 있다. 이곳은 언제 들어오게 됐나?

    △2020년 대학원 졸업을 한 뒤에 본격적인 작업실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실에는 저를 포함해 방상환·배우리·강혜지 4명의 작가가 있다. 모두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작가들이다.

    -예전에는 작업실이 ‘로그캠프’라는 이름으로 대안공간의 역할을 했다.

    △대학 동기인 장건율·방상환 작가와 함께 지난 2017년에 대안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도내에 유일했던 대안공간인 ‘마루’가 문을 닫은 이후 젊은 예술가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만들게 됐다. 이후로 작가들과 함께 지금까지 20여 가지 전시를 열며 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2022년 1월 마지막 전시를 하고 문을 닫았는데, 보통 대안 신생공간들이 2~3년 하고 끝나는 반면 오랜 기간 공간을 꾸려왔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청년 작가들의 추억이 많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몇몇 작가들의 첫 전시를 이곳에서 열기도 했고,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차원이 아니라 함께 전시를 재밌게 기획하고 꾸며간다는 것에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입소문도 꽤 많이 나면서 전시 때마다 청년 작가를 발굴하고자 하는 미술관 학예사 등이 들르기도 했다. 작업실이 된 지금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로그캠프’로 불리고 있다.

    -첫 개인전도 이곳에서 열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처음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다. 작업실 앞에 놀이터나 근처에 있는 창원국제사격장 인근 풍경, 근처에서 핀 꽃 등을 담아낸 그림을 전시했다.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담아내는 작업의 방향성을 시작한 전시이기도 하다.

    박 작가가 울릉도에서 그린 태하바다./성승건 기자/
    박 작가가 울릉도에서 그린 태하바다./성승건 기자/

    작품에 의미 부여 않는 게 의미

    미디어가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
    목적성 배제하고 주변 담아내
    유칼립투스 등 자연물 재미 느껴


    ◇의미가 없는 것의 의미

    -언제부터 주변을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는지.

    △대학원생 때부터 시작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디어로 보는 것들이 너무 많고,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미디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뭐든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리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것들이 더 용이했던 것 같다.

    -주변을 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의미다.(웃음) 많은 예술들이 어떤 상징으로서 남거나 계몽의 의미를 담기도 하는데, 나는 그저 의미 없이 있는 그대로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목적성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을 담은 작업이 많은 것 같다.

    -자연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마침 작업실 화병에 유칼립투스가 담겨 있다.

    △지난겨울, 단골 꽃집에 유칼립투스가 있길래 사 왔었다. 3월 파티마병원 갤러리에서 하는 개인전에 올릴 작품들도 이 유칼립투스를 보고 그리고 있다. 자연물이 유독 재미있는 것 같다. 가지는 곡선이고, 잎은 면인 그런 조형적인 요소들이 그리는 재미가 있고, 화면을 생기있게 채운다. 생각해보자면 어릴 때 신촌동 산골에 살았는데 주변이 온통 자연물이어서 자연 풍경을 보고 자란 영향도 있지 않나 싶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간단하다. 일단 화첩과 연필, 붓과 작은 팔레트를 들고 나간다. 주변을 산책하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으면 그곳에 주저앉아 화첩에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고 풍경을 화첩에 똑같이 옮겨 그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본 것의 형태와 요소를 가져와서 내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보면서 느낀 것들을 다시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풍경을 담은 화첩./성승건 기자/
    현장에서 풍경을 담은 화첩./성승건 기자/
    현장에서 풍경을 담은 화첩./성승건 기자/
    현장에서 풍경을 담은 화첩./성승건 기자/

    -주변이라는 것이 한정적인데 같은 곳만 그릴 수 없지 않나.

    △그래서 레지던시 활동으로 다양한 곳을 가고자 한다. 2021년에는 울릉도에서 2개월간 레지던시를, 지난해에는 경남예술창작소 레지던시로 합천을 가게 됐다. 올해도 다른 레지던시들을 알아보고 있다.

    -각 장소마다 다른 매력이 있던가.

    어느 곳이든 개성이 있다. 울릉도에서는 바다의 풍경과 부서진 방파제, 테트라포트를 그렸고 합천에서는 낙동강과 양파밭을 그렸다. 시골의 느낌이 참 좋다. 도시에는 높은 구조물이 많아서 시선이 위아래인 수직으로 가게 되는데, 도시에서 벗어나니 시선이 온통 수평으로 가더라. 너른 들판, 끝없이 이어진 바다, 그런 것들이 모두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있다./성승건 기자/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있다./성승건 기자/

    다양한 시도 펼칠 ‘청년 작가’

    작년 산업·도시 등 조명한 전시
    노동 현장 풍경 등 그대로 담아
    틀 깨고 유연한 변화 시도할 것


    ◇변화하는 것, 그렇기에 아름다운 청년

    -지난해 부산에서 했던 전시 ‘끈적이는 바닥 Ⅱ’에서는 과거 일했던 공장의 풍경을 담은 드로잉 작품도 선보였다. 기존에 이어오던 작업과는 달라 보이는데.

    △경남 지역의 산업과 도시 계획, 노동과 땅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전시였다. 현장에서 그려서 이미지를 가져왔던 평소와는 다른 작업을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일했던 창원의 자동차 공장과 코로나 팬데믹 당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있었을 때의 현장을 담았다. 어떤 의도를 담기보다 경험하고 보았던 것을 가져와 풍경과 현장 등 있는 그대로를 그려냈는데, 누군가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전하는 메시지로 해석하기도 했다.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있다./성승건 기자/
    박준우 화가가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있다./성승건 기자/

    -이런 작업이 앞으로의 방향과 연관이 있을까.

    △자연물과 주변의 풍경만 그리다 보니 언제부터 스스로 ‘틀’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걱정이 들었다. 작업을 할 때 폭이 좁아지는 거다. 결국엔 그리고 싶은 것도 못 그릴 테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틀을 깨고 유연해질 필요성도 느끼고 있다. 아직 청년인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것이고 많은 변화도 일어날 거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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