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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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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욕(辱)- 김형헌(남산중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24-01-16 19: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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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전 친구들의 모임에서 한 친구의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말에 또 다른 친구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벌컥 화를 내며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을 한 일이 있었다. 듣고 있던 우리는 모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친구를 쳐다보았다. 함께 계시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욕(辱)의 정의는 무엇일까?”, “세상에 태어난 욕(辱)의 사명은 무엇일까?” 하고 스무 살 남짓 제자들에게 질문하셨다. 질문이 생경하여 신선하기까지 했다. 왜 욕을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욕(辱)의 정의도, 욕(辱)의 사명도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사람의 잘못을 꾸짖음,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 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 욕(辱)이다.

    생각 없이 아무렇지 않게 뱉은 친구의 말이 다른 친구를 참을 수 없게 했고, 그것이 불같은 화와 욕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분한 마음에, 나의 화난 감정이나 억울함을 표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욕을 한다. 다른 사람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팩트’라는 말로 포장하여 냉정하게 꼬집어 말하고, 마음 깊이 감추어둔 아픈 부분을 부드러운 어투로 끄집어내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말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참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하고 싶어도 참고, 상대의 약점을 가려주고, 남의 아픔을 헤아려 말을 줄이는 사람이 아닐까.

    말을 잘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말을 잘 참는 어른이 된다는 것임을 잘 아는 우리들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이기도 하다. 본보기가 될 어른들이 화해를 모르고, 사고가 고착화되어 유연하지 못하다.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자기중심적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잘 인내함을 칭찬하고, 배려에 감사하고, 작은 실수도 따뜻하게 감싸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된다면 좀 더 근사하지 않을까?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이라 하던 나태주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 아침이다.

    김형헌(남산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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