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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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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바보- 김형헌(남산중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24-01-09 19: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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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는 나를 ‘바보’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 주고 인정해 주면 나 또한 그에게 애정을 쏟고 최선을 다한다.

    사람에게 그러하듯 직장과 일에 있어서도 주말과 방학을 가리지 않고 정성을 쏟다 보니, 휴식도 방학도 가족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듯해서 그런가 보다.

    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직장생활에 흐트러짐이 없고 반듯하다.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큰소리도 내지 않는다. 유머가 넘치고 늘 웃는 얼굴로 애정을 가지고 남을 도우려 애쓴다. 그러한 아내가 나에게 ‘막내의 대학 졸업식에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퇴직이 멀지 않은 교육공무원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직장의 입학식과 졸업식이 항상 같은 시기에 있어 담임으로, 부장으로, 관리자로 학급 아이들을 챙기고 행사를 진행하느라 내 아이의 입학식과 졸업식을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막내의 졸업식은 꼭 참석했으면 한다는 아내의 말에 날짜를 물으니 학교의 행사와 또 겹친다. ‘새 학년맞이 준비’로 업무분장 발표가 있고, 송별회가 예정된 날이다. 참 난감하다.

    직장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우리 세대 관습대로, 또 이제까지의 나의 행태로 참석이 어려울 걸 알면서도 감성적인 둘째 아이의 마음에 서운함을 남기고 싶지 않아 조심스레 건넨 아내의 말에 ‘어렵다’ 대답했고,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아내는 남편이 내심 서운하고 못마땅한가 보다.

    평소의 아내는 ‘직분에 맞게 맡은 일을 해야 하고, 남에게 일을 미루거나 불편을 주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직장에서 온 힘을 쏟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한다. 서로가 별반 다를 바 없어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다.

    말없이 산책길을 걷던 아내가 묻는다. “우린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면 바보스럽지 않아? 퇴직하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를 자랑스러워할걸?” “정말 그럴까?”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손만 잡고 흔든다.

    김형헌(남산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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