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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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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외로움이 물어다준 새 아침- 현경미 수필가(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 기사입력 : 2024-01-04 18: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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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느 때와 다른 설렘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던가. 아동문학에 입문하고 작년 12월, 첫 동시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 기쁨이 채 잦아들기도 전 이곳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이라는 꿈같은 소식이 날아들었기에 더한 것이리라.

    우리 집은 방문을 열면 못물이 훤히 보이는 못가 집이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른들은 논밭으로 일 나가고 없는 텅 빈 집, 방에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었던 충분한 이유였다.

    언니 오빠들 교과서나 문제집 그리고 언제부터 책장에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낡은 책들을 뒤적이며 놀았다. 그러다가 일기장에 시를 쓰기도 하고 라디오를 들었다. 읽고 쓰며 글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나에게 더없이 즐거웠던 놀이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추억해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즐거움이 내게서 등을 돌리자 외로움이 몰려들었다. 훨훨 날아오르는 동료들 모습에 더 움츠러들었고 어느 사이엔가 내가 보이지 않았다. 더는 견뎌낼 힘이 없었을까. 그만, 접기로 마음을 먹었다.

    펴둔 노트를 덮고 채워둔 책장의 책들을 다 꺼냈다. 한 무더기를 쓰레기 더미에 쏟아 붓고 왔을 때 바닥에 남아 있던 것들이 말을 거는 거 같았다. 애써 지나쳤다. 그러기를 며칠, 끝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책장에 꽂아 두고 또 몇 해를 보냈다.

    글 한 줄 쓰지 못해 드넓은 글 세상에 나아가지 못한다 해도 아파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무거운 존재가 되어버린 글쓰기를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까지 십 년 하고도 여러 해를 훌쩍 보냈다.

    홀가분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그때부터 글쓰기의 즐거움이 다시 내게 찾아든 것이다. 등단한 시기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지만 첫 동시집이 출간되었다. 더군다나 수필 신춘문예 당선이라니, 내게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쁜 일이다.

    지나고 보니 어렴풋이 알겠다. 외로움이란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만들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것일 테다. 더 높아지고 더 화려해지기를 부추기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더듬어 본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 번씩 들춰보곤 하는 어느 시인 산문집에 있는 글귀다.

    길었던 외로움의 시간들. 조금이나마 깊이 있게 혹은 우아한 삶으로 나를 이끌었을까. 책을 뒤적이며 글을 긁적이며 놀던 그 시절, 홀로 있어도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던 유년의 내가 스쳐 지나간다. 긴 외로움이 물어다 준 새 아침인 까닭일까. 오늘 더 반짝거린다.

    현경미 수필가(202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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